[르포] 밤 9시가 되자, 서울의 불이 꺼졌다

Է:2020-08-3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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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30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의 술집들이 일찌감치 문을 닫고 있다. 최지웅 기자

“오늘 주문 끝났어요. 돌아가세요.”

30일 오후 8시40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50대 점주 김모씨는 가게에 들어온 취재진을 향해 두 팔로 ‘X(엑스)자’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김씨는 손님이 남아있는 테이블만 빼고 한 손에 스프레이를 든 채 마감 준비로 분주했다. 50석 남짓한 가게 안에는 고기를 굽는 두 테이블 외에 모든 플라스틱 의자가 뒤집어져 있었다.

한 손님이 소주 1병을 추가하자 김씨는 “더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20년 장사 이래 더 주문하겠다는 손님을 막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일요일에도 대학생들이 늦은 시각에 많이 찾아왔었다.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하루 매출의 70%가 나온다”고 했다. 프라임 시간대인 오후 9시부터 문을 닫으라는 것은 김씨에게 차라리 일주일 쉬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수도권 지역에 강화된 방역 조치인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홍대거리와 종각 젊음의 거리 등 도심 유흥가는 오후 7시부터 적막감이 감돌았다. 휴일을 즐기려는 몇몇 시민들이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들은 오후 9시가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집합제한이 걸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영업을 이어가는 곳도 있었다.

30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한복판에 있는 공영주차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주차장 인근 술집은 이미 불을 끄고 영업을 종료했다. 최지웅 기자

17년간 홍대 어울마당로에서 치킨집을 해 온 한모(61·여)씨는 오후 8시부터 가게에 발을 들여놓는 손님에게 발열체크보다 술을 마실 건지 여부를 먼저 묻고 있었다. 그는 “전날 자정이 넘도록 집에 가지 않는 술 손님 때문에 난처했었다”며 “가뜩이나 없는 손님을 문에서 막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오후 9시 이후부터는 배달 영업이 가능하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씨는 “모르는 소리”라며 덜컥 화부터 냈다. 매장 영업에 비하면 배달 매출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씨는 “홀에서 생맥주를 팔아서 이윤을 많이 남기는데 배달은 치킨만 주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를 이길 방도도 없다.

치킨집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한 20대 버스커는 “원래 저녁부터 음식점 앞에서 웨이팅을 하는 손님들이 노래를 들어주고는 했다. 지금은 악기를 연주하기에 애매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오후 9시30분쯤 찾은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 역시 암흑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장에는 역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4시간 영업을 강조하던 순대국집은 영업 9시간만에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30대 종업원 A씨는 “수저통 정리는 새벽 팀과 자정에 교대하기 직전에 하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오후 8시에 정리를 마쳤다”며 “오후 8시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 입구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30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휴업에 들어간다는 안내문구가 적혀 있다. 최지웅 기자

서울시의 급작스런 집합제한 조치에 혼선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오후 10시가 다 되도록 등대처럼 홀로 불을 밝혀놓은 포장마차도 있었다. 이 포차를 운영하는 60대 B씨는 영업을 계속 해도 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공문을 받아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내일부터는 일주일 쉴 작정으로 나왔다. 남은 재고는 다 팔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열대에는 이미 눅눅해진 튀김과 말라버린 채 뒤엉킨 떡볶이만 가득했다. 동네 포장마차 사장들 가운데 1등으로 나와서 일하고 있다는 B씨의 설명이 무색하게 거리에 인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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