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1년간 미국 오리건주에서 근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한 지난 3월 8일 오리건도 우리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와 비슷한 ‘스테이홈’ 오더를 내렸다.
오리건의 스테이홈 오더는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가장 엄격한 단계인 베이스라인에서부터 점차 1~3단계로 완화해가는 4단계 과정이다. 베이스라인 단계에서는 필수 사업장 근무 인력은 재택근무를 해야 하고, 10명 이상 모이는 모든 행사는 금지된다. 문화·종교 행사 상한선은 25명이다. 식료품 가게와 약국, 은행, 주유소만 영업하며 모든 식당은 포장만 가능하다. 반드시 문을 닫아야 하는 사업장은 놀이터, 헬스클럽, 쇼핑몰, 수영장, 엔터테인먼트 사업장, 청소년 체육시설, 스파숍, 미용실 같은 개인 사업장이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와 매우 유사하다.
오리건은 이런 스테이홈 단계를 카운티(우리로 치면 자치구)별로 나눠 적용했다. 포틀랜드시를 비롯한 핵심 시설 군집 지역인 멀트노마 카운티는 전체 36개 카운티 가운데 가장 늦게 1단계에 들어갔다. 서울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3단계에 들어선다면 서울은 전국 모든 지역 가운데 가장 늦게 3단계가 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사례는 한국 3단계 생활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할 수 있는 게 드물다
베이스라인 오더가 내려지면 할 수 있는 게 드물다. 우선 대형마트에서는 6피트의 물리적 거리두기가 강제된다.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는 결국 매시간 입장 인원을 제한했다. 회원증 1장에 단 2명만 입장토록 했으며 전체 매장에 동시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200명 안팎으로 규정했다. 매일 코스트코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1~2시간 정도 대기를 감수해야 했다.

매장 물품도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손소독제와 마스크는 이미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부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한 약국 직원은 지난 4월 “이미 연말부터 중국인들이 마스크와 소독제를 싹쓸이해 갔다”고 전했다. 쌀, 화장지, 소독제, 스팸(햄) 등의 물건을 사재기하면서 코스트코 매장 앞에는 매일 매진 물품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의 방학 캠프는 모두 중단됐다. 학교도, 캠프도 못 가면서 아이들은 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농구나 축구 같은 캠프는 동영상으로 트레이닝을 시도했지만, 곧 중단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학교 온라인 수업은 주로 교사가 말하고, 아이들은 듣기만 하는 시간이 많았다. 짧은 온라인 미팅 후 온종일 숙제만 하는 식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이발소, 미용실이 문을 닫으니 거리엔 장발족이 넘쳐났다. 미용기구를 사 집에서 직접 머리를 자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 간단한 집 앞 산책만 허가되다 보니 집 근처 공원 조깅족이 대세로 떠올랐다. 오가는 사람들이 없을 땐 ‘턱스크’로, 누군가 다가오면 제대로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뛰는 사람이 늘어났다. 오리건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훨씬 심했던 워싱턴·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하루 5시간 이상 운전을 하면서까지 오리건으로 원정 골프를 다니기도 했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늘어만 갔다. 사람들은 마트에서 무더기로 장을 본 뒤 주로 집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포장 주문도 두려워했던 탓이다. 각 식당은 주문 비용의 3분의 1쯤 해당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일부 카운티는 자영업자에게 2000달러(약 238만원)를 긴급 지원하기도 했다. 여행업계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100년 역사를 지닌 미국 2위 렌터카 업체 허츠(Hertz)가 파산 신청을 냈고, 공룡 숙박 체인인 매리엇은 회원 포인트를 약 두 달간 60% 할인 판매했다.
작은 마켓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베드타운은 상황이 덜했지만, 포틀랜드를 비롯한 밀집 지역은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포틀랜더(포틀랜드시민)들은 외부 이동을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각 카운티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주 지사가 29개 카운티의 2단계 진입을 발표하며 “포틀랜더들의 양식을 믿는다”고 밝힌 것도 이들이 외곽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집단감염을 일으킬까봐 우려한 것이다. 한때 우리 대구·경북이, 지금 서울·수도권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계적 완화는 얼마나 걸리나
오리건은 지난 6월 기준 확진자가 5820명으로 전체 주 가운데 밑에서 14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주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워싱턴주(2만6901명)와 캘리포니아주(15만5601명)의 확진자 증가 추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지난 4월 기준 오리건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장기요양병원과 보조생활시설 수용자들이었다. 집단감염보다는 소규모 시설에서 전파되는 경향이 높은 셈이다.
그런데도 완화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멀트노마 카운티가 1단계에 진입한 것은 무려 6월 12일이다. 석 달 이상 베이스라인에 묶여 있었다. 자영업자는 “망하겠다”며 울상을 지었고, 실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장기간 가게를 비운 사이 노숙자나 부랑자들이 가게를 터는 경우도 많아졌다. 멀트노마 카운티보다 상황이 덜했던 31개 카운티는 5월 15일 1단계에 들어섰고, 이 가운데 26개 카운티는 6월 초 2단계 허가를 받았다.
1단계에 들어서면 미용실, 체육관, 쇼핑몰, 식당 등이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 수 있다. 모든 고객이 6피트(약 2m)의 거리를 두도록 자리 배치를 해야 하며, 인원 제한은 10명이다. 문화·종교 행사 제한 인원이 50명으로 늘어난다. 2단계의 경우 극장, 수영장, 체육활동 등이 재개된다. 3단계에 들어서야만 대형 콘서트나 메이저 스포츠 행사가 재개될 수 있는데, 백신 접종이 전제된다. 백신 소식이 없으므로 오리건에서 현재 3단계에 진입한 카운티는 없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23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확진자가 400명에 육박한 것을 정점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며 “유행의 양상과 규모 그리고 확대되는 속도를 계속 점검하면서 3단계 적용에 대한 필요성을 매일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3단계에 들어선다면 오리건의 베이스라인과 비슷한 제한이 적용될 것이다. 필수적 사회경제 활동을 제외한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공공·민간 다중시설은 폐쇄될 것이며, 모든 기관에서 재택근무가 장려된다. 미국과 달리 밀집도가 높은 한국은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커질 전망이다. 방역 당국이 방역수칙 준수를 간절히 호소하는 이유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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