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갈 곳 잃은 노인들… 더위 피해 ‘거리의 쉼터’ 찾아 유랑

Է:2020-06-1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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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종묘광장공원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최현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로당과 무더위 쉼터 운영이 중단되면서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과 은행 영업점 등 ‘거리의 무더위 쉼터’를 찾아 헤매고 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서 11일 만난 노모(72)씨는 “오늘만 지하철에 가만히 3시간을 앉아있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원래 자주 가던 경로당이 몇 달 전부터 문을 닫아 갑갑한 마음에 서울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다고 한다.

여름이 다가오자 바깥에 돌아다니기도 마땅치 않아 지하철 1호선에서 뱅뱅 도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노씨는 “신설동역에서 탄 뒤 가만히 앉아서 (1호선 종점인) 소요산역까지 갔다왔다”며 “집에만 있긴 싫고 밖엔 시원한 곳도 없으니 지하철이라도 타야지 어쩌겠나”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청량리역 구간 곳곳에는 행선지 없이 지하철에 탑승한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등받이에 기대 잠을 자기도 했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기도 했다.

오전 11시30분쯤 종로3가역 부근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노인들로 만석이었다. 1층과 2층을 채운 20명가량의 노인 대부분이 탄산음료나 아이스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래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민망한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곧장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A씨(84)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휴지로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았다. 그는 “이렇게 더운데 마땅히 갈 데가 없으니 친구 사무실에도 가서 에어컨도 쐬고 그런다”고 말했다.

참을 수 없는 더위에 민간 영업장에서 눈치를 보면서 땀을 식히는 노인들도 있다. 청량리역 부근 은행 안 좌석에는 5명의 노인들이 앉아있었다. 70대쯤 돼 보이는 여성은 구슬땀을 식히려 부채질을 했다. 그 옆에는 60대 여성과 남성 둘이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모(81·여)씨는 “집이 좁아 여름엔 너무 습해 갇혀있기가 힘들다”며 “밖에 나와 은행 같은 곳에 잠깐 앉아있기도 하는데 그것도 눈치 보이고 미안해 금방 나온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씨는 “작년까지도 여름에 경로당이나 무더위 쉼터에 자주 갔었다”며 “솔직히 다시 열었으면 좋겠는데, 정부가 하는 일이고 우리 노인네들이 뭘 알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공원에 그늘을 찾아 나온 노인들도 많았다. 서울 강북구 소재 근린공원에는 8명의 할머니가 정자 아래 그늘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근처 경로당 식구들이라고 했다. 박모(67)씨는 “경로당이 문을 닫으니까 여기 언니들이 다 그늘에서 바람이라도 쐬려고 나와 있다”며 웃어 보였다.

민간시설은 어르신들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치다. 서울 은평구 소재 은행원 B(26·여)씨는 “매년 여름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은행에 오시곤 했지만 올해는 경로당이 문을 닫아 은행으로 더 많이 오실 것 같다”며 “정수기에서 물을 담아 가는 분도 많은데 감염에 취약한 환경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위 피할 장소를 좀 더 고민하는 등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가는 등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무더위 쉼터 운영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서울 지역 복지관과 경로당 3500여곳은 지난 2월 21일부터 모두 휴관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2020 여름철 종합대책’을 통해 여름철 어르신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계획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지금 당장 무더위 쉼터를 열 수 없다”며 “추이를 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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