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를 통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실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신청과 동시에 기부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강요한 정부는 부랴부랴 메뉴 개편을 카드업계에 지시했다.
1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를 통한 긴급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전날부터 이날까지 각 업체에 기부 취소 요청이 쏟아졌다. 민원인들은 카드사 홈페이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기부 버튼을 눌렀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KB국민·NH농협·BC·롯데·하나카드는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상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에서 직접 기부를 취소하거나 금액을 수정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신한·삼성·현대카드 회원은 콜센터에 요청해야 한다.
단 취소는 대부분 당일 오후 11시 반까지만 가능하다. 이후에는 재난지원금 관련 전산자료가 정부로 넘어가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다. 매일 오후 11시 반부터 다음날 0시 반까지 2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스템 점검 시간이기도 하다. 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원치 않게 기부한 사실을 다음날 알아챘다면 취소할 길이 없는 셈이다.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뒤에는 취소해줄 수 없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재난지원금 기부 취소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원자는 “(수령)금액을 확인하는 것처럼 돼 있어 금액을 적었는데 이게 기부된다는 걸 다음 날 아침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며 “하루만 취소가 가능하게 한 건 너무한 것 같다”고 적었다.
실수 기부자가 속출하는 건 교묘한 신청 화면 때문이다. 카드사는 신청자가 개인정보 입력과 본인인증을 마치면 수령금액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부하기’ 항목을 함께 띄운다. 신청과 동시에 기부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구성인데 이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기부가 이뤄진다. ‘기부하지 않기’ 같은 선택지 없이 기부금액을 반드시 적도록 돼 있다. 기부를 원치 않는다면 금액을 ‘0’으로 적어야 신청을 마칠 수 있다.
한 신청자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면서 이렇게까지 기부를 유도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며 “취지를 살리겠다면 지원금 사용을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신청자는 “이런 ‘기부 버튼 끼워넣기’는 보이스피싱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실수가 ‘동의’를 재난지원금 수령을 위한 형식적 절차로 생각하고 무심코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만큼 대부분 전액을 기부하게 된다. 전액 기부를 전액 수령으로, 기부금액을 수령금액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화면 구성은 정부 아이디어라는 게 카드업계 해명이다. 행정안전부는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에 기부 항목을 함께 넣도록 하면서 “혼선 우려가 있으니 기부 화면을 따로 만들자”는 업계 건의를 무시했다고 한다.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카드업계에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을 수정하도록 했다. 행안부는 “13일부터는 전액 기부를 선택하면 팝업창으로 재차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기부하지 않음’도 선택할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신청 당일을 넘기더라도 추후 주민센터 등을 통해 기부를 취소하거나 금액을 수정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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