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에 어린아이를 앉힌 여성은 창밖을 가리키며 활짝 웃어보였다. 아이가 답답한지 마스크를 벗으려 하자 여성은 얼른 다시 마스크를 씌웠다. 일행이 탄 버스에 취재진의 이목이 쏠리자 다른 여성은 창가를 커튼으로 완전히 가렸다. 겉옷 모자를 뒤집어 쓰거나 마스크를 올려 쓰는 등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많았다. 계속된 대기시간과 비행에 지친 듯 눈을 비비거나 기지개를 피는 교민도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을 피해 중국 우한 교민들이 귀국한 31일, 김포공항에 내린 그들의 표정에는 반가움과 불편함, 피로감이 함께 묻어났다.
우한 교민 368명은 이날 중국 현지시간으로 오전 5시 출발해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한국시간 오전 8시 10분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비지니스항공센터(SGBAC)에 도착했다.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복지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 측의 사전검역 결과 우한 공항에 모인 교민 369명 중 1명이 탑승하지 못해 최종 368명을 모셔왔다”고 밝혔다. 김 부본부장은 “도착한 교민 중 총 18명이 의심증상을 보여 격리했다”면서 “의심환자를 제외한 350명은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한다”고 덧붙였다.
이송 과정은 중국 현지에서부터 급박하게 돌아갔다. 교민들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30분쯤에 공항에 모인 교민들은 이륙까지 6시간 가까이를 대기해야 했다. 본래 전세기 표에 명시된 탑승 예정시간은 이날 오전 1시45분이었으나 검진 및 수속 절차가 늦어져 출국 게이트 앞에서 2시간 가량을 대기한 뒤 오전 3시쯤부터 검진과 탑승이 시작됐다. 수속이 좌석 번호대로 진행된 까닭에 뒷번호를 받은 교민은 오전 4시에야 탑승이 가능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출국 전 중국 측의 사전 검역 뒤 입국과정에서 실시된 한국 측의 발열 검사에서 12명의 의심증상이 발견됐다. 한국 측의 발열 검사 기준은 중국 정부의 37.3도보다 높은 37.5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발열카메라가 걸러낸 인원을 한국 검역관이 추려 증상 검역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의심증상이 발견된 이들은 전세기 2층 공간에 별도로 탑승했다.
전세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실시한 검역에서도 6명에게서 추가로 발열 증세가 발견됐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발열 증세가 긴장 등 심리적 영향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어 (신종 코로나 감염인지를 가려낼) 구체적 원인을 현재로선 파악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 우한 현지에서 중국 정부 검역에 탈락한 교민 1명은 자택으로 귀가해 현지 모니터링을 받을 예정이다.
전날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측 기준을 초과하는 발열자는 출국이 금지된다”면서 발열 증상이 있는 교민은 귀국이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앞선 발표를 뒤집은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중국 측 검역기준을 우리가 최대한 존중을 하고 그 검역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데려올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우리 국민들이 귀국을 희망할 경우에는 모두 귀국시킨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세기 안에서는 여유 공간이 없이 옆자리에 붙어앉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전세기를 타고 입국한 한 교민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세기를 1기밖에 띄우지 못하는 바람에 다들 빈자리 없이 탑승했다”고 말했다. 증상이 드러나진 않은 교민에 의해 2차 감염이 우려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당초 증상이 나타난 인원을 격리된 별도 전세기에 태우고 증상이 없는 이들도 앞이나 뒤, 옆자리에 앉지 않도록 대각선 방향으로 좌석을 배치해 이송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날 중국 정부가 전세기 이송을 1대만 허락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교민끼리의 전염을 막기 위해) 교민 전원에게 N95 마스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N95 마스크는 특수 필터로 공기 내의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의료용 마스크다.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이 착용한다. 이외에도 정부는 환경티슈 등으로 기내 소독을 하고 3분마다 환기되는 공기환류시스템 가동했다고 덧붙였다.
의심증상을 보인 18명은 국립중앙의료원에 14명, 중앙대병원에 4명이 각각 이송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 입원이 뒤 음압격리병상에 들어가면 바로 검체를 채취해서 진단검사를 수행할 예정”이라면서 “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새벽부터 교민들 도착이 예고된 김포공항 현장은 다소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현장에 배치된 항공사와 공항 직원들 사이에서는 “동선을 몇 번이나 바꾸니 힘들어 죽겠다” “정신이 없다”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민 수송을 위해 현장에 도착한 한 경찰은 “갑자기 집에서 연락을 받고 나왔다”면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면 공항공사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데, 허가가 되지 않아 조정 중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경찰은 도착 직후에 게이트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10분여 가량을 대기해야 했다.
환자 이송에 필요한 구급차 대수가 충분히 조율되지 못한 모습도 보였다. 김포공항에서 이송 차량이 모두 빠져나가고 난 30분 뒤 인근 지역 소방서에서 응급차가 환자 수송을 위해 추가로 도착했다. 현장 관계자는 “구급차가 부족해 멀리서 부르느라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조효석 강보현 권민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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