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인사이드] CCTV 1000개로 분석한 범인 맞나…핵심쟁점은 ‘디지털 증거능력’

Է:2020-01-12 17:50
:2020-01-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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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경찰 의뢰를 받아 내놓은 '영상 분석 결과 보고서'의 일부분. 왼쪽은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죽은 새와 협박 편지를 부친 혐의로 기소된 유모씨의 모습. 국과수는 유씨와 용의자(오른쪽)와의 동일인 여부에 대해 ‘판단 불가’ 결론을 내렸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죽은 새와 칼, 협박 편지를 보낸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된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유모씨의 재판에서 ‘디지털 증거능력’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유씨가 소포를 부치는 과정이 찍힌 CCTV 영상을 증거로 그를 재판에 넘겼는데, 변호인 측은 이 영상의 증거능력을 무효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변호인 측은 ‘CCTV 영상 1000개 속 범인이 과연 유씨인지’에 대한 의심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와 남부지검은 지난해 6월 유씨의 협박이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검찰 공소장 등에 따르면 흰색 줄무늬 옷에 마스크, 모자로 얼굴을 가린 용의자는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포를 부쳤다. 이후 장소를 옮겨 한 건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검은색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유씨가 나왔다. 유씨는 대중교통을 10차례 갈아타며 종로구, 성북구를 빙빙 돌아 강북구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수사인력을 총동원해 20일간 주변 CCTV 영상 1000여개를 뒤져 이런 행적을 발견했다.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들어간 건물에 유일하게 유씨가 다시 나온 점, 용의자가 건물 밖에서 만났던 지인을 유씨도 만난 점 등을 통해 행색이 다른 두 인물을 동일인물로 특정했다.

그러나 유씨 변호인은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서 CCTV 증거능력을 무력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 자료는 쉽게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동일성’과 ‘무결성’이 보장돼야 증거능력으로 인정된다는 판례를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법원에 제출된 자료가 원본 파일과 같아야 하고(동일성), 원본이 복사·출력되는 과정에서 바뀐 게 없다는 사실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무결성)이다.

변호인 측은 5차례 공판에서 편의점 업주 등 CCTV 관리자와 경찰 등 증인 40여명을 대상으로 ‘CCTV 관리자가 경찰의 영상 복사과정을 모두 지켜봤는지’ ‘경찰이 CCTV 영상을 재촬영한 휴대폰을 봉인했는지’ ‘법원에 제출된 영상과 원본 영상의 해시값(파일이 갖는 고유한 데이터 값)이 같은지’ 등을 물었다. 그 결과 재판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된 90여개 영상 중 일부는 원본 해시값이나 관리자 확인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에 배송된 흉기, 협박편지, 죽은 새가 담긴 택배. 경찰은 용의자 추적에 나섰고 다음 달 대학생진보연합 소속의 유모씨를 체포했다.

변호인 측은 지난해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문제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CCTV 인물이 유씨임을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국민일보가 12일 입수한 감정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과수는 용의자와 유씨의 동일인 여부에 대해 ‘판단 불가’ 결론을 내렸다. 걸음걸이와 착의에서 일부 유사점과 상이점이 관찰되지만, 비교인물 간 촬영 조건이 달라 세밀한 비교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또 관악구, 성북구 편의점 CCTV에 찍힌 용의자의 키를 170cm 초반이라고 계측했다. 유씨 키는 180cm 초반이다.

반면 수사당국은 “행색을 바꿨으니 당연히 판단이 불가한 것”이라며 “국과수도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을 가져오라’는 의미였고 감정은 계속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 재판은 지난 2013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화염병 투척 사건 때와 판박이다. 당시 진보단체 소속 회원이 원 전 원장 자택에 화염병을 투척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그의 동선이 담긴 CCTV 영상의 동일성, 무결성 논란으로 2018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이뤄졌다. 권양섭 군산대 법학연구소 교수는 “동일성, 무결성 기준이 사건에 적용돼 무죄가 나온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현재 유씨 변호인은 2013년 사건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냈던 변호사다. 그는 이번 재판의 심문 변론 등도 과거와 유사하게 끌고 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리는 6차 공판에서는 디지털 전문가에 대한 검찰의 심문이 이뤄진다. 검찰은 CCTV 영상에 위조, 변조의 흔적이 없다는 전문가 의견을 내세워 증거능력을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디지털 증거능력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은 “강력범을 잡기 위해 수천개 CCTV를 빠른 시일 안에 봐야 하는데, 동선 추적 과정 속 모든 영상의 해시값을 저장하고 매체를 봉인해야 한다는 건 수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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