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중인 검찰이 10일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옛 균형발전비서관실)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면서 아무런 자료도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불발됐다.
서울주앙지검 공공수사 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10시쯤 청와대 여민관 자치발전비서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영장 내용을 두고 벌어진 청와대와의 신경전 끝에 오후 6시20분께 철수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검사와 수사관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대기하고 자치발전비서관실로부터 자료를 임의제출 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검찰은 전날인 9일에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형발전위)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일명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참모진이 모두 전보 조치 된 상황에서 이틀 연속으로 울산 선거개입 의혹 관련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 영풍문 등에서 압수수색 영장과 수사상 필요한 증거 목록을 청와대 측에 제시한 뒤 자료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하려 했다. 자치발전비서관실의 전신인 균형발전비서관실이 송철호(71) 울산시장의 공공병원 등 공약과 관련해 생산된 자료 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은 이번에 네 번째다. 2018년 12월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와 관련해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과 반부패비서관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당시 대통령 경호처, 감찰무마 의혹 관련 대통령비서실 압수수색 때 각각 임의제출 방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유감 표명하며 자료제출 거부한 靑
그동안 협조적이었던 청와대가 이번엔 달랐다. 검찰이 ‘범죄자료 일체’라는 취지로 압수 대상을 기재해 압수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의제출할 수 없다고 밝히며 사실상 제출을 거부했다. 보여주기식 수사를 벌였다는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10일) 압수수색 종료 후 기자들에게 보낸 SNS 메시지를 통해 “오늘 검찰이 가져온 압수수색 영장은 압수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어떤 자료를 압수하겠다는 것인지 단 한 가지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고 자치발전비서관실에 있는 범죄자료 일체 취지로 압수 대상을 기재했다”며 “임의제출할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영장”이었다고 비판했다.
고 대변인은 또 “형소소송법 제199조 제1항과 2항에 따라 수사를 위한 강제처분으로 원칙적으로 필요최소한도의 범위에 그쳐야 하고, 특히 공무소의 자료가 수시에 필요할 경우 공무소 조회 절차를 통해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즉 공무소에 대해서는 가급적 강제처분을 자제하라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공무소 조회 절차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다면 청와대는 종래 임의제출 방식으로 협조해왔던 것처럼 가능한 범위에서 자료를 제출했을 것”이라고 한 고 대변인은 “검찰은 임의제출 방식으로도 협조하기 어려운 압수수색 영장을 가져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 대변인은 그러면서 “가능한 절차를 시도하지 않은 채 한 번도 허용된 적이 없는 압수수색을 시도하는 것은 실현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여주기식 수사를 벌인 것으로 강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은 수사와 관련해 필요한 사항을 공무소, 즉 공무원이 사무를 보는 곳에 조회를 요청하고 보고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에도 “절차에 따라 성실히 협조했다”면서도 “비위 혐의가 있는 제보자 김태우의 진술에 의존해 검찰이 국가 중요시설인 청와대를 거듭 압수수색한 것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대통령비서실에 여러 차례 자료 제출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검찰은 청와대 측 언급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이미 대통령비서실에 자료 임의 제출을 여러 차례 요구했는데도 청와대가 낼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에 영장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 집행에 착수한 영장은 법원에서 ‘압수할 장소 및 물건’을 적법하게 특정해 발부한 것”이라며 “같은 내용의 영장이 기초해 지난 9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사무실 등 압수수색을 정상적으로 실시했다”고 말했다.
“오늘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과 함께 상세한 목록을 추가로 교부해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의 ‘압수할 물건’ 범위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로부터 제출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영장 집행을 거부할 경우 승낙·거부 의사를 명시한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압수수색 절차를 더 진행할 수 없어 집행 절차를 중단했고 앞으로 필요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검찰은 장환석(59)전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 행정관 등이 송 시장의 선거공약 설계를 도운 것으로 의심하고 이날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전날 장 전 행정관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전 행정관은 2017년 10월 송 시장의 측근인 정몽주(54) 울산시 정무특보,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 등과 선거 공약을 논의한 자리에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검찰은 전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의 균형발전위 사무실도 압수수색해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고문단 활동내역 등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후속 인사 전 혐의 입증하려는 검찰
균형발전위는 지역 간 불균형 해소와 국가균형발전 정책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 장관들이 대거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송 시장은 울산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2017년 12월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됐다. 검찰은 여권 인사들이 함께 참여한 고문단을 통해 송 시장이 공약 수립과 이행에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서를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장 전 행정관을 소환해 송 시장의 핵심 공약이었던 공공병원 건립 사업이 2018년 지방선거에 활용됐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고위간부 인사가 단행된 8일에는 정 정무특보를 소환하고, 9일과 10일 잇따라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후속 인사 전에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오는 13일부터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찬호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등 지휘라인이 바뀐다.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 등 실무를 책임져온 중간 간부도 이달 안에 단행될 후속인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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