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에 멈춰있는 내 친구 수진이…위험징후 그때 알았더라면

Է:2019-12-0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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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자] 자살예방지킴이 교육 듣고보니…그때 손짓이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수진(가명)이는 밝고 웃음이 많은 친구였다. 키 150㎝ 남짓한 작은 몸집을 가졌는데 웃음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그 아이가 웃으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따라 웃었다. 수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 건 그 해 날씨가 쌀쌀해질 때쯤이었다. 결석은 3~4일 이어졌고 친구들에게서 수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정불화와 군기가 센 교내 동아리 문화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이후 10년 간 무슨 이유에선지 수진이는 잊히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를 걷다가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리면 수진이가 떠올랐다. 언론사 첫 출근 전날에 생각난 이도 다름 아닌 수진이었다. 동창들과 이런 감정을 나누며 마음을 달랬다. ‘우리는 이렇게 사회인이 됐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수진이는 아직도 열여덟 살에 멈춰있구나’, 정체 모를 부채의식마저 느꼈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19 생명지킴이 교육 한마당’에서 자살예방 생명지킴이 교육을 들으면서 그간 수진이를 잊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됐다(국민일보 12월 2일자 2면 보도 참고). 마음이 힘들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행 전 주변에 언어적, 행동적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죽고 싶다” “그간 고마웠다”고 말하거나 ‘주변 정리하기’ ‘급격한 업무 능력 저하’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드니 나를 제발 도와달라’는 절박함 외침이다. 강사는 “주변인이 이런 신호를 보이면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본 후 상담기관에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진이도 결석하기 일주일 전부터 이런 신호를 보냈었다. 해맑던 아이가 180도 변했다. 말수가 없어졌고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생겼구나’ 느낄만큼 표정이 어두웠다. 그러나 곧 수험생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려 수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만약 그때 내가 수진이의 절박한 외침을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면?’, 수업 내내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이 잇따라 목숨을 끊으면서 어느 때보다 주변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한다. 실제 지난해 샤이니 종현 등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조금 감소했던 자살 사망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이 2017년 24.3명에서 지난해 26.6명으로 늘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로 다시 올라섰다.

그러나 자살 징후에 대한 교육, 홍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가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생명지킴이 교육’이 대표적이다. 이 교육은 일반 시민에게 자살 위기자의 신호를 포착하고 그에게 말을 건네는 법을 알려준다. 생명지킴이로 4년 간 활동해온 박태규(68)씨는 “작은 관심으로 자살을 지연, 차단하는 중요한 교육인데 잘 알려져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생명지킴이 교육을 홍보하기 위해 열었던 행사도 평일 낮에 이뤄져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했다. 관련 예산도 터무니없이 적다. 같은 날 국회자살예방포럼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자살 예방교육’ 등 예산은 총 예산의 0.016%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일 “지난해부터 ‘매년 생명지킴이 100만명 만들기’를 목표로 홍보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정부 예산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살 예방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 또 다른 ‘수진이’들은 신호를 알아챈 주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부디 ‘열여덟’에 멈추지 않고 함께 나이 들어가길 바란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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