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상산고와 경기도 용인 외대부고, 강원도 민족사관고처럼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해온 입시 명문고들이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년 3월 일반고로 일괄 전환된다. 이들 학교에는 일반고와 마찬가지로 지원자를 대상으로 추첨하거나 근거리에 사는 학생이 들어가게 된다. 일부 일반고에 부여된 전국단위 선발 특례도 폐지된다. 과학고와 영재학교는 선발권을 유지하되 입시 제도가 개편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유 부총리는 “이달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작업을 시작해 2025년 3월에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토록 하겠다”며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일반고 49곳에 주어진 특례도 폐지해 다른 유형의 고교서열화도 사전에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예고대로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고입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먼저 고교 유형이 대폭 간소화된다. 현재는 일반고와 자율고, 특수목적고, 특성화고, 영재학교로 구분된다. 세부적으로는 일반고 자사고(자율형사립고) 자공고(자율형공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영재학교다.
2025년 3월 정부 방침이 적용되면 일반고와 특목고, 특성화고, 영재고로 고교 유형을 단순화된다. 세부적으로는 일반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영재학교가 된다. 11종의 고교 유형에서 자사고 자공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뺀 7종만 유지하는 것이다.
전국단위 자사고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 등 대도시권이 아닌 지역 자사고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해당 고교 소재지가 평준화 지역인지 비평준화 지역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종전의 명성은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컨대 평준화 지역에 위치한 전국단위 자사고 울산 현대청운고는 2025년 3월부턴 다른 일반고처럼 1단계는 울산 전역에서 지원하고, 2단계로 거주 학군 내에서 지원한다. 1순위로 현대청운고를 지망한 학생을 뽑고 고교와 인근 지역에 사는 학생 등이 2순위 등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전북 전주 상산고도 평준화 지역이어서 전주 지역 학생을 중심으로 비슷한 방식으로 학생을 모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추첨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강원 민족사관고는 학교가 학생 선발권은 가질 수 있다. 다만 강원도 학생만 뽑을 수 있다. 그 지역 일반고와 같은 방식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일반고 전환 뒤 당분간 지역 명문고로 위상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현재 명성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광역단위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변화도 상당하다. 서울 대원외고는 그동안 서울 전역에서 학생을 뽑아왔다. 외고가 없는 세종이나 광주 등에서도 지원 가능했다. 2025년 3월 일반고로 전환되면 1단계로 서울 전역에서 지원자를 받고, 2단계로 가까운 거리에 사는 학생들을 받아야 한다. 고양국제고의 경우도 평준화 지역에 있어서 선발 방식은 대동소이할 전망이다. 강원외고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따라서 강원도 학생에 한정해 선발권을 유지하게 된다. 다만 2025년 이전에는 외고가 없는 지역 학생들을 뽑을 수 있었으나 외고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지면서 강원도 학생으로만 한정해 뽑는다.
일반고 중에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수준의 입시 실적을 보이는 학교들이 있다. 비결은 전국단위 학생 모집이다. 전국에 49곳이 있다. 교육부는 이들 학교에 주어진 전국단위 모집 특례도 없애기로 했다. 자사고 등과 마찬가지로 평준화냐 비평준화 지역이냐에 따라 선발권이 한정적으로 주어진다.
예컨대 공주사대부고와 전북 익산고의 경우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국 단위 선발을 해오고 있었다. 2025년 이후에는 학교장이 각각 충남과 전북에서만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평준화 지역에 있는 세종의 세종고는 세종 학생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시·도교육감이 배정하게 된다.
과학고 20곳과 영재학교 8곳은 일반고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학생 선발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과학고와 영재학교이 선행학습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학생 모집시기, 모집 방법 등 전반적인 제도 및 운영 상황을 점검해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영재학교의 지필평가를 폐지하거나 사교육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현재는 영재학교가 먼저 뽑고 과학고가 뒤에 선발하지만 동시선발 방식도 검토하기로 했다.
외고, 국제고는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학교 명칭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외고·국제고 유형은 사라지지만 대원외고나 고양국제고란 이름은 남는다.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2024년 이전에 합격해 이미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들은 졸업까지 기존 자사고 외고 국제고 학생 신분이 유지된다. 종전 교육과정 그대로 공부하게 된다.
정부의 자사고 등 일반고 일괄 전환에 대해 교육계에선 실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2025년 3월이면 차기 정부 중반에 해당한다. 시행령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야당과 보수 성향 교육계가 자사고·외고 폐지가 ‘하향 평준화’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결국 20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집권하는 세력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란 얘기다.
일반고 전환 대상 학교들은 강력 반발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정부가 평등교육을 한다며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빼앗고, 공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다양한 수월성 교육에 충실해온 자사고를 말살시키려 한다”고 반발했다. 전국 외고·국제고 학부모연합회도 “외고·국제고는 획일적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라며 “당사자인 학교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어떤 공론화 과정도 없이 마치 ‘마녀사냥’ 하듯 여론을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조성철 대변인은 “학교 제도와 운영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을 훼손하는 처사이자, 학교 다양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며 “고교 체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고교 교육이 하향 평준화되고, 수월성 교육 수요가 과학고와 영재학교로 쏠려 지금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사교육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강남·목동 등 교육특구 고교 인기가 치솟는 이른바 ‘8학군 부활론’이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교육 특구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과 전세 가격이 폭등해 일종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교육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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