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2025년 3월 한꺼번에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전북 상산고 사태까지만 해도 “일괄 전환 불가” 입장이 확고했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으로 입시 불공정 해소 요구가 빗발치자 ‘검토’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관측이다.
다만 교육부는 “아직 결정은 안 했다”며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 입시와 고교체제 개편 등과 엮인 간단치 않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면 교육 현장은 난장판이 된다. 먼저 자사고·외고·국제고 측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상산고 사태에서 확인됐듯 학교 구성원, 학부모, 동문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역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상산고 사태에선 전북 지역 중진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의원 151명이 반대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런 반발을 뚫더라도 난관은 또 있다. 자사고 등 폐지는 대입과 고교체제 개편 논의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수월성 교육의 수요를 일정 부분 충족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학교를 일괄 폐지하더라도 수월성 교육 수요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자사고 등의 폐지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서울 강남 등 ‘교육 특구’로 수월성 교육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른바 ‘강남 8학군 부활론’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고교학점제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수강 과목을 골라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제도다.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면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수월성 교육 수요를 일반고 내로 흡수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예컨대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관련 과목을 학교 안에서 집중 이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줘 외고 중국어과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여당이 염두에 둔 자사고 일괄 폐지 시점이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3월과 겹치는 이유다.
그러나 고교학점제 안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고교학점제는 내신의 절대평가 전환이 기본 전제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위해서는 수능 절대평가화해 힘을 빼야 한다. 대학 입시 전반을 손대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또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되면 강남 등 교육 특구 학교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몰린 학교로 진학하더라도 내신 성적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일반고의 역량이 자사고·특목고 수준으로 오를지도 미지수다.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해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가능하려면 교사도 더 많이 뽑아야 하고 강의 공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막대한 투자가 수반돼야 가능한 얘기다. 대도시권 큰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시골의 작은 학교 학생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가 다르다면 지금보다 교육 공정성이 후퇴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진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대입도 뜯어고쳐야 한다. 이상론에 가깝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2025년이면 차기 정부 중반인데 지금 내놓는 정책이 그때 가서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