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의 췌도와 각막을 각각 당뇨병 환자와 실명 환자에게 옮겨심는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 임상시험이 이르면 내년 1월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식 환자의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장기 추적 관찰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무산될 수도 있다.
국제 전문가들은 한국 내 이종 이식 관련 법규와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 부재 상황 해결을 권고하고 나섰다.
서울대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단장 박정규)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이종이식학회(IXA)와 세계이식학회(TTS) 윤리위원회 소속 저명 학자들을 초청해 임상시험 국제 전문가심의회를 개최한 결과 국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세계 첫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실시해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16일 열린 심의회에는 전 IXA윤리위원회 회장인 리처드 피어슨 미국 하버드의대 외과학 교수를 비롯한 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종간 췌도와 각막 이식 임상시험을 위해 필요한 임상시험계획서와 환자 및 보호자 동의서, 전임상(동물실험)연구결과 등을 검토했으며 연구 책임자들의 발표를 직접 듣고 심층적 논의를 진행했다.
리처드 피어슨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는 “한국이 지난 15년간 이종간 췌도 및 각막 이식 연구에 큰 진전을 이뤘고 조만간 빛을 보게 되길 희망한다”면서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종이식 관련 법‧제도는 안전하고 투명한 임상시험 수행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므로 빠른 시일 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권고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난치병인 1형 당뇨병과 실명 초래 각막 질환 등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이종간 췌도 이식과 각막 이식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 성과와 기술 개발을 이뤄왔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지난 15년간 500억원 넘게 투입됐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앞두고 국내에는 이를 관장할 소관 부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관련 법, 제도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이번 국제 전문가 심의회에도 정부 부처 관계자를 초청했으나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사업단은 생명을 위협하는 저혈당을 초래하는 1형 당뇨병 환자 2명과 양쪽 눈을 실명한 각막 질환자 2명을 임상시험 대상자로 정하고 내년 초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임상시험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종간 장기 이식의 경우 별도 규정이 없다.
이화여대의대 권복규 교수는 “이종 이식의 경우 생명윤리법에 따라 국가생명윤리심의원회 심의를 거쳐 임상시험을 할 순 있다”면서 “다만 이식받은 환자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장기 추적 관찰(2년 이상)을 하려면 법규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따라 추적 관찰 대상 질환자에 이종간 장기 이식 환자가 포함될 수 있을지 복지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유권해석으로 추적 관찰이 가능하다고 하면 임상시험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만약 그게 안되면 환자 안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임상시험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규 단장은 “오는 5월이 바이오장기개발사업 기한이 만료인데, 그때까지 임상시험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간 확보한 세계 최고의 이종 장기 이식 기술과 연구 기반 등 일궈온 성과들이 모두 사장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간 장기 이식은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장기를 갖도록 개량된 무균 미니 돼지의 췌도(膵島)를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해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특히 췌도나 췌장 등 부족한 장기 기증을 대체할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7년 스웨덴과 2005년 중국에서 돼지 췌도를 당뇨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된 적 있지만 당시에는 과학적이고 윤리적 기반하에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8년 이종간 이식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안전하고 투명하게 시행되도록 국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각국이 그에 따르도록 했다. 한국의 이번 임상시험은 WHO가이드라인에 맞게 진행되는 세계 첫 사례다.
리처드 피어슨 교수는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국(FDA)이 이종간 이식의 모든 과정을 규제하고 있으며 매 사안마다 심의회를 열어 안전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법제도가 없는 한국의 경우 미국 FDA를 통해 관련 규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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