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전기요금 누진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누진세’를 검색하면 300개가 넘는 청원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청원은 전기요금 누진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올라온 누진세 관련 청원만 150여건에 달한다.
‘전기 누진세 폐지좀 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청원인은 “전력 소비를 많이 하는 이들은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전력 다소비업종의 기업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기업 사용자들 중 상위 세 개 기업은 광역시 한 곳의 사용량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전기를 많이 소비하면서도 요금할인을 받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국민들은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누진세가 무서워서 불볕더위에 지쳐가고 열사병을 얻어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에어컨이 비싸서 못 사는 게 아니다. 누진세가 무서워서 못 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청원은 27일 오후 1시25분 기준 2만1352건의 동의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올해 누진세를 개편하면서 가구 부담을 많이 줄였다. 복지할인제도도 확충해 저소득층의 전기료 부담도 줄일 것”이라며 “전기사용량 조절과 저소득층 보호 등을 위해 누진세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할인제도는 기초생활수급권자나 장애인 등에게 전기요금을 매달 1만6000원씩 할인해 주는 제도다. 하계기간인 7, 8월에는 2만원까지 할인해 준다.
한전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주택용 누진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법무법인 인강의 곽상언 변호사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기수요 조절과 저소득층 보호를 위해 주택용 전기에 누진제가 필요하다는 한전의 주장은 모순덩어리”라고 비난했다.
그는 “전체 전력소비의 55%는 산업용 전력이, 30%는 상업(일반)용 전력이 차지하고 있다. 주택용은 13%에 불과하다”며 “전체 전력소비를 좌우하는 것은 산업용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력소비가 가장 높은 시간대는 사람들이 집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퇴근시간 전후가 아니라 산업현장이 가동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며 “한전이 전체 전기수요를 조절하려면 산업용, 상업용 전기를 규제해야 하는데 애꿎은 가정용 전기만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은 전기 사용량이 적기 때문에 누진제로 인한 피해가 적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미만의 5인 이상 가구가 최저생계비의 5배에 달하는 소득을 가진 1인 가구보다 훨씬 전기를 많이 쓴다”며 “한 가정의 전기사용량을 좌우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의 숫자지 소득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소득이 적을수록 소득에서 전기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최저생계비 가구는 가처분소득의 3~4%가 전기비로 나가는 데 반해 최저생계비의 5배 이상인 가구는 0.3% 수준”이라며 “소득에 관계없이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은 한전이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가정들을 대상으로 착취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마지막으로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수도나 가스, 기름에도 없는 누진제를 왜 전기에만 적용하느냐”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회사가 전기 공급을 독점하고 갑질을 부리는 행태를 국가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6월 인천지방법원은 “주택용에만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이 급등하는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곽 변호사와 소비자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용자들이 약관의 내용을 협상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에 상관없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주택용 전력을 사용하는 전기사용자들이 일반용 전력 등을 사용하는 전기사용자들에 비해 차별적으로 전기 사용을 억제당하는 누진제를 적용받아야 할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인천지법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에서는 한전의 편을 들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한전이 인천지법에서의 판결에 항소함에 따라 누진제 존폐 여부를 두고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빈 인턴기자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