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쌀은커녕 몸 누일 집도 없던 어린 시절. 그런데 성인이 돼 남은 건 이상하게도 아련하고 따뜻한 기억뿐입니다. 그 시절, 누구보다 사랑받았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19일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자신을 ‘가난하고 자상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소개한 글이 화제였습니다. 이 게시물은 하룻밤 새 1만회 넘게 조회됐는데요.
사연의 주인공인 A씨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초등학교 때는 그야말로 길거리에 나앉았다”고 하네요. 당시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A씨 가족은 건너건너 알게 된 아주머니 집 지하실에 둥지를 틀어야 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쌀이 없어 미숫가루로 연명했고, 설탕이 없어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을 타서 먹을 정도였죠. A씨는 “가끔 엄마가 어디선가 밥을 얻어오면 물을 많이 넣어 끓여서 네 식구가 나눠먹었다”면서 “당시 초등 저학년이었던 남동생이 한그릇 먹고는 ‘나 국물만 좀 더 달라’고 해서 우리끼리 막 웃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A씨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늘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느낌이었다”면서요. 원망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청소년기에는 “차라리 엄마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서 내가 깨끗하게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A씨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명문대에 입학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계에 보탬이 된 거죠. “아마 신께서 제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한 번의 대운을 주신듯 했다”는 그는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적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엄마가 도망가지 않을까 마음 졸이던 아이, 이제는 한 가정을 꾸린 어엿한 성인입니다. A씨는 “ 다시 태어나도 저는 제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날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다. 아이들은 비싼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무능했지만 저희를 정말 아껴주셨던 아빠와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이 참 아름답게 저장되어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생각으로 사셨던 엄마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A씨의 고백은 잊은 줄만 알았던 저마다의 어린 날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연이 댓글로 이어졌습니다. 나이 먹을 수록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곱씹게 된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재산을 물려 받으셨네요. 저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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