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이 담긴 문건에는 당시 사법부가 청와대의 친(親)검찰 기류를 주시하며 견제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사정(司正)을 주도해 사법부 이슈가 중심에서 밀려난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가 전날 공개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 방안’ 문건에는 이러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2015년 7월 작성된 이 문건은 정국의 무게중심이 BH에 쏠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임 김기춘 비서실장 영향에 따라 부정적 분위기가 고착돼 있고 VIP(대통령) 핵심 보좌진의 친검찰 구성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사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청와대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BH 설득의 최종 골든타임 임박’이라며 적극적인 전략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대통령의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을 일정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도 청와대 내 ‘검찰 라인’의 영향력을 다시 언급한다. 문건에는 ‘전임 비서실장, 민정수석의 검찰 중심적인 사고와 반(反)법원 정서가 상고법원 설치 반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썼다.
특히 우 전 수석에 대한 평가는 관련 문건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제2사정 정국 조성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 ‘비서실장보다 더 자주 VIP 독대한다는 소문’ 등 청와대 내 우 전 수석의 입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다른 문건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선적이며 자기소신이 강함’ ‘청탁이 통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 소유’라며 우 전 수석의 성향을 나열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검사 시절부터 형성된 사법부에 대한 견제의식과 심정적 반감이 상고법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임’이라며 그가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이어 ‘민정수석의 부정적 입장 선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고 결론지었다.
결국 사법부 수뇌부는 우 전 수석을 거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을 직접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논란이 된 전교조 법외노조, 원세훈 댓글 수사 판결 등 재판 거래 의혹이 그 과정에서 파생됐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협조할 방안을 검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아가 법무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와 ‘공안사건의 증거채택 원칙 완화’까지 검토했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에 제동을 걸어야 할 사법부의 본분까지 저버린 것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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