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전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 박모(49)씨가 18일 석방됐다. 영장 기각이 떨어진 다음날인 19일 자정 12시57분쯤 그는 “지금 몹시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경찰서를 홀연히 빠져나갔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강간살인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양 부장판사는 “피의자 주장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제출된 자료들을 종합할 때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 사망시점이 2009년 2월1일쯤이라는 최근 감정결과를 전혀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고,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이 공들여 내놓은 동물사체실험 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셈이다.
또 2009년 2월1일 새벽 무렵 범행현장 부근인 애월농협유통센터 앞 CCTV와 애월읍 장전리 산빛마당펜션 앞 CCTV에 NF 소나타로 추정되는 차량의 옆 부분이 촬영되기는 했지만 피의자의 차량인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제출한 미세섬유 증거물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우측 무릎과 어깨 등에서 당시 피고인이 입었던 진청색 남방의 직조섬유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발견됐다는 감정결과는 그저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친다고 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택시 외의 다른 용의차량에서도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꼬집으면서 경찰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거짓말탐지기 검사와 POT 검사(긴장정점 검사) 및 뇌파검사 등의 결과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는 이날 오전 10시12분쯤 제주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했다. 호송차에서 내린 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법정으로 들어갔다.
이후 영장심사를 마치고 오전 11시57분쯤 제주 동부경찰서로 다시 돌아온 그는 “혐의를 인정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또 “현재 억울한 심정이냐”는 질문에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기도 했다.
강경남 제주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결과를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경찰은 전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으로 박씨에 대한 영장을 신청했다.
김기헌 제주경찰청 형사과장은 “경찰은 9년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의 종결은 아니므로 경찰은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박씨는 16일 오전 8시20분쯤 경북 영주시의 모처에서 붙잡혔다. 같은 날 오후 5시30분쯤 제주로 압송해 동부경찰서 내 유치장에 입감했다.
경찰은 과거 CCTV 영상을 보정해 재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장면을 찾아내고, 당시 피해자에 몸에서 채집한 미세섬유 증거물을 분석한 자료 등을 토대로 혐의 입증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왔다. 올해 1월29일부터 3월2일까지 피해자 사망 시점 재특정을 위해 동물사체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박씨는 영장 기각이 떨어지고 다음날인 19일 자정 12시57분쯤 “지금 몹시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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