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인 17일 서울 도심에서 성차별·성폭력 철폐를 촉구하는 여성단체 집회에서 등장한 손팻말 중 하나다. 검은색 옷차림에 투명한 우비를 걸친 참가자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여성폭력 중단하라” “성평등 세상 만들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교보타워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주도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 집회 참가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참가자 일부는 'I'm a FEMINIST'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었다.

사회를 맡은 오보람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의 선언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그는 “우리가 멈추지 않으려면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라며 “변화는 지금부터 이제 시작이다. 성폭력 성차별 반드시 끝장내자.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차별연대 금지법제정연대 소속 쥬리 활동가는 "중요한 미투 공간이 학교다. 특히 초중고 성폭력 증언이 쏟아진다. 이전에도 학생들 증언했으나 응답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모든 여성이 성폭력을 겪는다. 성폭력은 성별 권력의 문제다. 이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노인, 장애등 차별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밀했다.


오후 8시9분께 참가자들은 굵어진 빗줄기 사이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렬 사이에서는 "여성도 국민이다" "안전한 나라 만들어라" 등의 구호가 이어졌다. 행진은 신논현역 6번 출구에서 강남역 4번 출구까지 진행됐다.
참가자 이모(24·여)씨는 "강남역 사건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홍대 몰카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일한 범죄에 대해 동일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라며 "이런 현실이 얼른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가했다"라고 뉴시스에 말했다.
장모(42·여)씨는 "오늘 나오면서 더욱 우울했다. 2주기인데 비가 와서 하늘이 같이 운다고 느껴졌다. 2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라며 "젠더 폭력을 바꾸고 싶어 오늘 나왔다. 우리가 연대해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고모(30)씨는 "최근 여성에 대한 범죄를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껴서 집회에 나왔다. 여성 인권은 성과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내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라며 "남성도 남자다움이나 힘을 강요받고 있다. 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당초 행진은 신논현역에서 강남역까지 이동한 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건물 앞을 지나 되돌아오는 경로로 예정됐으나 악천후와 안전 우려로 강남역까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에는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지만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 미투운동은 사회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성평등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미투운동을 이어갈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성단체 집회는 서울 이외에 대구 대구백화점 앞, 전북 전주 전북대 구정문 앞, 부산 서면 하트조형물 앞, 경남 창원 상남분수광장 등에서도 열렸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약 2000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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