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사진) 전 충남지사는 하루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려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안 전 지사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 이른바 ‘친노의 적자’로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옥고를 치렀으며,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우리는 폐족(廢族)”이라는 말을 남기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2010년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고,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하루 만에 성범죄 수사 대상으로 전락해 재기불능 상태가 됐다.
국민들은 “왜 안 전 지사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고 묻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가 탄로날 게 뻔한 성적 일탈행위를 저지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 전 지사의 행위 근간에는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초법적·일탈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6일 “미투 운동을 언급한 날에도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자신의 문제 행위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범죄를 범죄인 줄도 모르는 초법적·일탈적 사고를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안 전 지사가 성추문이 대중에게 공개될 가능성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피해자를 소모품으로 보고 ‘원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전 지사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도덕성을 강조해 온 진보 진영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안 전 지사 선호도가 높았던 젊은 세대의 실망감이 크다. 그러나 이 같은 정서가 6·13 지방선거 등 현실 정치에서 진보 위기론으로까지 확산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오히려 미투 운동을 계기로 국민들의 관심이 ‘진보·보수의 대립’에서 ‘권력·평등’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녀 문제 등 일상적 관계에서 보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정립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개혁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이날 안 전 지사 제명을 의결했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안 전 지사로부터 소명하지 않겠다는 회신을 받았다”며 “윤리심판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김지은씨는 이날 서울서부지검에 안 전 지사를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혐의가 적시됐다. 김씨의 법률대리인 장윤정 변호사는 “피해자의 바람에 따라 서부지검에 소장을 접수했다. 범죄 장소 중 하나가 서부(지검 관할)에 있다”고 설명했다.
노용택 윤성민 임주언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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