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장래희망 ‘건물주’, 위험한 추락… 제천 화재에 구속영장

Է:2017-12-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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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방송사가 청소년의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 고등학생들의 응답은 1위 공무원, 2위 건물주였다. 모두 직업의 안정성을 선호한 결과였다. 과거 직업 분류에서 ‘기타’에 포함되거나 후순위에 밀려 있던 ‘건물주’는 이제 당당히 하나의 직업으로 여겨지게 됐고, 선호 직종 2위에까지 올랐다.

청소년이 선망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목표’를 물으면 건물주라는 답을 내놓곤 한다. 야구선수 김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은 종종 “서장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서장훈처럼 키가 크고 싶다든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서장훈처럼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부동산 학원에 다니며 건물주가 될 준비를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 일대의 경매학원은 20대 대학생과 30대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중·장년층이 노후를 위해 찾던 과거와 대조적이다. 학원 관계자들은 “임대업을 준비하는 연령대가 확실히 낮아졌다”며 “대기업보다 공무원, 공무원보다 건물주가 인기”라고 입을 모은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안정적 고소득을 선호하는 요즘 세태를 함축하고 있다. 건물주보다 고소득을 안겨주는 직종은 많지만 건물주만큼 실패할 위험부담이 적은 것은 드물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 구속 위기 놓인 ‘건물주’

66명 사상자를 낸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를 수사 중인 경찰이 참사가 발생한 건물의 주인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수사본부(본부장 이문수·충북경찰청 2부장)는 건물주 이모(53)씨와 관리부장 김모(51)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26일 “오늘 중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건물주의 업무상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25일 압수수색 영장을 별도로 발부받아 이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차량과 휴대전화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화재 전후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불이 난 스포츠센터의 소방 점검을 담당했던 소방안전점검업체 J사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주와 관리인, 소방업체 등의 총체적인 과실을 파헤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생존자 진술 등을 통해 1층 로비에 있는 스프링클러 알람 밸브가 폐쇄돼 화재 당시 일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20명의 희생자를 낸 2층 여성 사우나의 비상구 통로는 철제 선반으로 막혀 탈출이 불가능했다. 소방시설법상 폐쇄·차단 등의 행위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 사망하게 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씨는 지난 8월 스포츠센터를 경매로 인수한 후 9층 일부를 불법 증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참사가 난 스포츠센터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로 지어졌다. 경찰은 8·9층 테라스와 캐노피 등 53㎡가 불법 증축된 사실을 확인했다. 관리인인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화재 발생 당일 오전 발화 지점인 1층 천장에서 얼음 제거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에게도 건물 관리부실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66명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24일 오후 건물주 이모(53, 왼쪽)씨, 건물 관리부장 김모(51)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뉴시스

◇ ‘불법’ 천지였던 건물

최악의 화재 참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는 ‘불법투성이' 건물이었다. 무허가증축이 버젓이 이뤄졌고 용도를 변경해 사용해 왔다. 당초 이 건물은 7층으로 지어졌다. 이후 2012년과 2013년 각각 행정관청 허가를 받아 증축해 지금의 9층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합동 감식팀의 현장 점검 과정에서 아크릴로 덮인 81.31㎡의 8층 음식점 앞 테라스와 아크릴·천막 재질의 지붕이 덮인 53.25㎡의 9층 테라스 등 2곳은 불법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증축 허가 범위를 벗어나 무허가 구조물을 건물에 덧입힌 것이다. 불법 증축 부분은 지난 21일 화재 발생 당시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면서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방이 트여 있어야 할 8, 9층에 아크릴과 천막이 덮인 테라스가 설치된 탓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 스포츠센터의 옥탑은 사실상 ‘10층’이었다. 이곳에 있는 기계실(56.28㎡)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8.54㎡는 화재 당시 주거 용도의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기계실 용도를 변경하지 않고 일부 시설만 고치는 경우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주거용으로 아예 구조를 바꾸려면 용도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건물주는 당국의 허가 없이 용도 변경 수준의 개조 작업을 벌여 버젓이 사용해 왔다.

경찰은 건물주 이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소방시설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이미 충분히 조사됐다”며 “불법 증축과 용도 변경 등의 입증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층 강화된 ‘건물주 책임’

소방방재청은 2011년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2012년 2월부터 본격 시행했다. 건물주의 소방 안전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의 소방특별조사는 건축물의 소방시설 유지관리 상태를 소방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던 체제였다. 개정 법률은 소방시설 유지 및 안전관리를 건물주의 자체 점검에 맡기고, 소방공무원은 건물주들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표본조사를 하도록 했다.

소방시설 유지관리를 건물주 자율에 맡기는 대신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취하는 조치를 크게 강화했다. 소방관서는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해 부적합 건물로 판정될 경우 건물 사용제한, 개·보수명령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건물주가 이행해야 할 소방시설 설치 기준도 대폭 높였다.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주택화재의 예방을 위해 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부산 고층건물(우신골드스위트, 38층) 화재를 계기로 30층 이상 건축물에는 주방용자동소화장치, 자동화재속보설비, 무선통신보조설비, 입상배관이중화도 의무화됐다.

소방방재청은 당시 “이번 제도 개편을 계기로 건축물 소방안전 업무가 소방관서 주도의 규제 중심에서 건물주 중심의 자율안전관리 체제로 바뀌었다”며 “국민의 자율안전관리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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