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립형사립고에 이어 외국어고도 입시 경쟁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은 최근 원서접수를 마감한 경기도 8개 외고의 경쟁률이 1.57대 1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87대 1보다 줄어든 수치다. 비수도권 외고 경쟁률도 1.53대 1로 지난해 1.64대 1보다 소폭 하락했다.
반면 국제고 경쟁률은 소폭 상승했다. 국제고 5곳의 경쟁률은 2.15대 1로 지난해 1.96대 1보다 높아졌다. 입시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중학생 수가 12.4% 줄어든 점과 정부의 외고 자사고 축소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국제고는 신도시에 있으며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진학 실적이 우수하다는 특징 때문에 경쟁률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자율형사립고·국제고·외국어고의 '우선선발권'을 박탈했다. 이 학교들이 '우수학교' '인기학교'로 존재하게 된 기반을 허물어버리는 조치였다. 학생들을 향해 "이 학교에 진학하려거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석될 만큼 자사·국제·외고 진학의 '리스크'를 높여놨다.
교육부는 신입생을 우선 선발해온 외고·자사고·국제고가 내년 12월부터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일 입법예고 했다.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의 첫 발을 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빠진 과학고와 영재고로 학생들이 몰리는 '풍선효과', 과거 평준화 시절처럼 일반고 중에서 인기학교 서열화가 이뤄지는 '8학군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과학고·영재고 '풍선효과'?
지금까지 자사고, 국제고, 외고는 일반고보다 한 달 가량 앞서 신입생을 선발했다.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점해 특목고로서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일반고와 동시에 입시를 치르게 되면 결국 일반고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게 되리란 관측이 많다. 지금처럼 우수한 학생을 독식할 수 없게 되면 '입시명문'이라는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특목고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힘을 싣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도한 입시경쟁과 고교서열화를 완화하고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일반고 전환 희망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도 마련하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등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국가교육회의 안건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 학생 우선 선발권이 유지되는 과학고나 영재고로 우수 학생들이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문과 성향의 학생들이 외고와 국제고를 지원하는 경향이 많아 이공계 계통의 과학고나 영재고는 맞지 않을 수 있는 측면은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과학고나 영재고를 '무풍지대'라고 착각할 수 있고 정부도 (과학고와 영재고를) 다른 특목고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부도 과학고와 영재고는 졸업생 대다수가 이공계로 진학하는 등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외고·자사고 등은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인재양성 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해 입반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서울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수능 응시 인원 등을 기준으로 한해 평균 전국 자사고 입학생 1만6000명 가량 가운데 이과 성향 학생은 60~70% 정도로 파악된다"며 "자사고가 폐지되면 이과 성향의 학생들은 과학고나 영재학교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과학고·영재고 쏠림현상으로 사교육 수요가 수학, 과학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고와 영재고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이들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이 적지 않아서다. 지난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응답한 중3 4811명과 고1 78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교육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고·영재고 희망자중 월 평균 사교육비 100만원 이상 지출 비율은 31.6%로 광역단위 자사고(진학 희망자의 43%), 전국단위 자사고(희망자의 40.5%)를 뒤따랐다.
◇ 강남 8학군의 부활?
한편에서는 평준화 시절 '대입 명문고'로 꼽혔던 '강남 8학군'과 지방 일부 고교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생들은 선택권을 침해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며 "명문 일반고의 부활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일부 일반고는 인기가 많아 경쟁률로만 따지면 자사고·외고보다 높다. 우수한 학생들이 비선호 원거리 학교에 배정된 뒤 전학 가는 현상이 심화한다면 일반고 안에서의 학교 서열화는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연합회장인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학생·학부모에게 선택의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지는 게 발전된 사회"라며 "특목고·자사고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일반고 배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방향성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공동대표는 2일 "특정 학교가 입시를 먼저 치러 학생들을 선점하는 입학전형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입시를 동시에 치르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이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우선선발권을 폐지하는) 지금은 출발점에 선 상태"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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