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건 몰라도 계란만큼은 비싼 것을 먹어야 한다.”
이 말은 언제부턴가 마트를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 ‘상식’처럼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진열대에 친환경·유기농 제품이 크게 늘어나고 밀집사육 실태 정보가 확산되면서 나돌기 시작한 말인 듯하다. 인터넷에는 블로그와 커뮤니티마다 ‘왜 친환경을 먹어야 하는가’ ‘왜 비싼 계란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글이 넘쳐났다.
“닭은 먹는 대로 낳는다. 좁은 케이지에선 운동량이 부족해 질병이 걸리기 쉬우므로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는 닭을 키울 수가 없다. 암탉이 섭취한 항생제는 그대로 계란에 전달된다.”
“계란은 아주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 중에도 항생제나 성장촉진제를 투여하지 않은 닭이 낳은 건강한 유정란은 오메가3와 지방산이 일반 계란에 비해 훨씬 풍부하다.”
다 맞는 말이었다. 구제역 사태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까지 가축과 관련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열악한 사육환경이 늘 원인으로 꼽혔다. ‘동물복지’를 외면한 결과는 전염병의 창궐 등 다양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고 깨끗하게 자란 닭이 낳아야 그 달걀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생산하면 값이 비쌀 수밖에 없으니 달걀은 비싼 걸 먹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한다.
그런데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 소비자는 연일 뒤통수를 맞고 있다. 정부가 전수조사한 전국 산란농장 중 52곳이 살충제 성분 검출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그 중 31곳이 친환경 계란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일반 계란보다 월등히 비싼 값에 팔리는 친환경 계란이 ‘살충제 계란’의 주류를 차지한다. 더욱이 계란에 존재해서는 안될 맹독성 물질인 DDT 성분까지 나왔는데, ‘DDT 계란’은 유명 생협인 ‘한살림’에서 최고가에 팔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 10개 7500원에 판매된 ‘DDT 계란’
DDT가 검출된 계란은 친환경을 표방하는 한살림생활협동조합(생협)을 통해 유통돼 왔다. 조합원 수만 60만명이 넘는 대형 생협이다. DDT 검출이 확인되기 직전까지도 해당 제품을 “안심하고 드셔도 좋다”며 살충제 없는 유정란이라고 홍보해 왔다. 이 계란은 한살림생협에서 파는 유정란 중에도 가장 비싼 가격인 10알에 7500원으로 판매돼 왔다. 21일 현재 이 제품의 판매는 중단됐다.
한살림생협 관계자는 “생산과정에서 살충제나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만전을 기해왔다”며 “계란의 성분 검사는 정부 기준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중복해서 따로 검사하지는 않았었다”고 말했다. 한살림생협은 DDT 검출이 확인된 후 공인검사기관과 자체 검사인력이 현장에 가서 정밀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한살림생협에 ‘재래닭 유정란’을 공급하고 있는 경북의 농가 2곳에서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검사 결과 DDT성분이 각각 0.028ppm, 0.047ppm이 검출됐다. 허용기준인 0.1ppm의 절반 이하이지만 정부 검사에서 맹독성 DDT가 검출된 곳은 이 곳뿐이다.
한살림생협에 따르면, 이 계란은 좁은 닭장으로 대표되는 공장형 축산이 아니라 재래종 닭을 자유롭게 방사하는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생산됐다. 살충제와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농장이었다. 한살림생협은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통하는 널찍한 계사에서 암수 서로 정답게 어울려 낳은 유정란으로, 무항생제 사료와 함께 청초, 풀김치를 먹인 건강한 닭에서 생산하였다”며 “활동성이 좋은 재래닭을 위해 넓은 운동장을 제공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이런 농장 환경이 오히려 DDT 성분을 계란에 전이시켰다. 넓은 운동장의 흙이 DDT에 오염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살림생협 관계자는 “흙에 DDT성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살림생협은 “재래닭유정란을 생산하는 농가 2곳에서 안전성검사 적합판정을 받았지만, DDT성분이 미량 검출되어 출하를 정지하였다”며 “재래종을 복원해 넓은 운동장에 자유롭게 방사시켜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흙을 쪼아먹는 닭의 습성상, 토양을 통한 잔류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DDT성분은 1979년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된 농약이다. 한살림생협은 “38년전 사용이 중단된 농약의 잔류에 의한 비의도적인 사안임을 고려하여 토양 및 생산현장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진행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다시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조합원은 “닭이 흙을 쪼아먹는 다는 걸 알았으면서 왜 처음부터 토양검사는 하지 않았냐”며 “살충제 얘기가 나온 건 10여년 전이고 적어도 1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살충제 논란이 있었다는데 왜 그 동안 한차례도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인지 허술한 시스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 살충제 검출 농장 52곳 중 31곳이 ‘친환경’
농림축산식품부의 전국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에서 검출된 살충제는 '피프로닐' '비펜트린' '플루페녹수론' '에톡사졸' '피리다벤' 등 5종이었다. 비펜트린이 37건, 피프로닐이 8건으로 가장 많았다. 검사 대상 농가 1239곳 중 52곳이 살충제 검출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부적합 산란농장 52곳 중 60%에 해당하는 31곳이 ‘친환경’을 표방하며 계란을 생산하고 있었다. 친환경이나 유기농 인증마크를 부착하고 판매되기에 당연히 비싼 값에 팔린다.
이렇게 친환경 계란서 살충제가 나오고, 최고가 제품서 DDT가 검출되면서 “계란은 비싼 걸 먹어야 한다”는 ‘상식’은 무참히 깨졌다. 소비자단체는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농가와 이들에게 친환경 인증을 해준 기관을 대상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소비자 권익보호 단체인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친환경 약속을 지키지 않은 농장과 관련 인증기관을 대상으로 부당이득반환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 단체는 “소비자는 안전한 식품 섭취를 위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인증 식품을 선택하는 소비태도를 보여 왔는데, 이번에 드러난 친환경 제품의 실태에 크게 실망하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는 어떤 농약도 검출돼선 안 된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 농가에 직불금 혜택까지 주고 있다. 그런데도 “비싼 값을 무릅쓰고 친환경 제품을 구매해온” 소비자의 우호적 선택까지 모두 배신한 터여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인증기관 및 친환경 인증농가에 투입되었던 직불금 등 각종 국가 지원금은 부정하게 수급된 거여서 전부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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