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23일 밤 10사30분쯤 대전 중구의 한 오피스텔. 환기를 위해 블라인드를 올리던 20대 여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창문 밖에서 벌떼가 날아다니듯 ‘웅웅’ 하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 소음의 정체는 오피스텔 창문에 바짝 붙은 채로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던 회전익 드론이었다.
실내이고 더운 날씨 탓에 평소보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여성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서 대담하게 드론을 띄워 촬영하고 있었다"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겁이 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비슷한 피해를 당할 경우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의 촉구성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여성은 소음을 인지한 시점을 통해 추정해보니 ‘드론 몰카’가 자신의 방을 20분 넘게 촬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인근 건물 거주자들을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를 펴고 있다.
#장면 2.
지난달 27일 밤 11시쯤 광주 광산구의 원룸촌.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헤집고 떠오른 소형 드론이 원룸의 2층 창가에서 일정한 높이로 한참 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원룸 거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랐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드론을 이용한 몰카 촬영이 공공연히 이뤄졌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인근 10여 곳의 CCTV를 분석하고 드론 판매업소 등을 탐문해 40대 자영업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인 용의자는 “단순히 취미로 드론 비행연습을 했을 뿐 몰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그의 드론에 카메라가 장착됐는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 화면 등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터라 짧은 스포츠형 머리 스타일을 한 이 남자가 귀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은 몰카 범행의 증거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공항 주변 반경 9.3㎞ 이내 ‘관제권’에서는 허가받은 비행물체만 띄울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항공법’ 위반 혐의로 이 남자를 입건할 방침이다.
이처럼 '몰래카메라'는 눈에 띄게 진화했다. 드론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집안 내부를 은밀히 촬영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최근 대전과 광주에서 경찰이 '드론 몰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인터넷에는 드론 몰카로 촬영한 많은 영상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경찰청은 2006년 517건이던 몰카 범죄가 2016년 5185건으로 10년 사이 10배 이상 급증했다고 14일 밝혔다. 성폭력 범죄 중 몰카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3.6%에서 24.9%로 7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몰카 관련 법적 규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로 타인의 신체를 찍어 배포·판매하는 행위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지만 소형·특수 카메라 등 신종 촬영장비의 음성적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드론 몰카'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이 허가받은 사람만 소형·특수카메라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드론의 시대'를 맞았고, '드론 부착 몰카'에 속수무책인 처지가 됐다.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에는 일명 ‘몰카 판매금지법’ 입법 청원에 현재 1만8372명이 참여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부터 10일간 인권침해 영상물의 효율적 차단과 유통 방지를 위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방통위는 해마다 몰카와 보복성 영상물 등을 통한 인권 침해가 급증하고 있어 유포자와 사업자를 형사고발하고 63개 웹하드, 주요 포털사업자와 협력해 삭제·차단 등 신속한 조치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드론 몰카는 성폭력처벌법 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며 “갈수록 교묘해지고 진화하는 몰카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을 덜어줄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법안이 서둘러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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