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째 진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에 대해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가 명백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천경자 코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허술한 그림 하나가 한 작가를 큰 고통으로 몰았다”며 강하게 호소했다. ‘천경자 코드’는 왜 미인도가 위작인지 그 근거를 정리한 책이다. 김 교수와 남편인 문범강 미 조지타운대 교수, 미술사학자인 클리프 키에포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함께 이 책을 펴냈다.
김 교수는 키에포 석좌교수의 감정서를 공개하며 “‘미인도’는 짧은 시간에 어머니의 화풍을 흉내 낸 허술하고 조악한 작품”이라면서 “허술한 그림 하나가 작가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여러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갔다”고 토로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작 가운데 하나였던 ‘미인도’를 천 화백의 이름을 걸고 전시관에 전시했다. 천 화백은 즉각적으로 반발해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어미가 어디 있느냐”며 “자신의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에 “진품이 맞다”고 맞서면서 양측의 긴 공방이 시작됐다.
김 교수는 조사 결과 ‘미인도’는 숟가락을 비롯해 홍채, 인중, 입술, 스케치 선 등 5가지 ‘코드’를 통해 위작임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또 “천 화백은 여인상의 특정 부위를 숟가락으로 비비고 문지른 뚜렷한 흔적을 남겼지만,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들의 권위 때문에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 측 공동변호인단 대표인 배금자 변호사는 ‘미인도’ 위작 논란을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배 변호사는 “위작을 폐기하는 것은 국가·공공기관의 의무고, 작품과 관련해서는 작가 의견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며 “이 사건이 국립현대미술관과 얽혀 있지 않았다면 작가 의견에 따라 ‘미인도’는 벌써 폐기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가 작가 의견을 무시하고 10가지가 넘는 부분에 대해 날조하는 등 조직적인 음해가 이뤄졌다”며 “진실을 밝혀 짓밟힌 명예를 회복하고, 미술계 적폐를 바로 잡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자문 등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의 제작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고 발표했지만 천 화백 유족은 이에 반발했다. 김 교수가 책을 출간하면서 천 화백의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에 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미인도’ 진위 논란은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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