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위안부’ 합의 불가역적… 文, “역사문제는 현명하게 해결해야”
최근까지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 끝에 교착상태에 머무는 것을 반복해왔다. 군국(軍國)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정권의 행보는 더욱 노골화됐고, 양국 관계의 암초는 더욱 도드라졌다. 극도로 첨예해진 북한 문제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어려운 공통 변수가 됐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위안부’ 합의에서 드러나듯이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은 최소한의 국민적 공감대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졸속·굴욕 외교라는 여론의 역풍만 거세졌고, 그마저도 탄핵 정국 이후엔 외교적 공백 상태가 지속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 양국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속에 산적한 과제 해결을 위해선 보다 빈번하고 폭넓은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성화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당분간의 조정 국면은 불가피하겠지만, 외교적 ‘모멘텀’의 시작은 일단 한·일 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 간 만남도 최대한 앞당겨질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1일 전화 통화에서 이른 시기에 직접 정상회담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일본은 자국이 의장국을 맞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당겨 문 대통령의 조속한 일본 방문을 제안한 상태다. 앞서 아베 총리는 “최대한 빠른 기회에 (문 대통령을) 만나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길 기대하고 있다”며 조기 정상회담을 요청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외교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일단 대화의 물꼬가 터진 이후의 관건은 한·일 관계에 공존해 온 호재와 악재의 ‘분리’와 ‘관리’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경제 사안 등을 놓고 양국 간 공조와 관계증진의 연결고리를 보다 강화하면서 첨예한 악재들이 연결고리를 끊는 것을 방지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양국 정부의 합의와 선택에 따라서는 한·일관계가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개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낙관론의 전제다.
하지만 궁극적인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선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은 여전히 많다. 가장 넘기 힘든 험산은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합의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11일 첫 전화 통화에서도 핵심 갈등 사안인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를 놓고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일본의 법적 책임과 공식 사과가 담기지 않은 협의는 무효이며, 올바른 합의가 되도록 일본과 재협상을 촉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날 양국 정상 간 첫 통화에서도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민간 영역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국민들의 정서와 현실을 인정하면서 양측이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당부를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재협상 가능성 자체를 일축하고 있다. 이날 전화 통화에서도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국제사회에서 평가받고 있는 만큼 책임을 갖고 실시(이행)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 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해 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합의가 유효하다는 지지까지 얻은 상황이다. 이날 아베 총리가 소속된 집권 자민당의 외교 분야 의원 모임인 ‘외교부회’에서도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모로 양국이 향후 합의안 존속과 파기 문제를 놓고 대립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비친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로 대립해온 양국이 이른 시일 안에 관계를 정상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북한 위기 상황에서 쌍방이 마냥 갈등만 키워갈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위안부 문제를 풀려면 합의 내용에 대한 이행 점검이 우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동북아 정치 및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민일보에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 향후 양국 관계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우선 한국 내에서 합의에 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 2015년 12월 28일 합의가 어떻게 체결됐는지 합의 도출 과정과 경위 등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어 “합의 내용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합의 이행에 있어서 한국 측과 일본 측에서 이행 위반 사항이 있는지, 양국에서 합의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면서 “화해·치유 재단(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2016년 7월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의 사업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증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반강제적으로 건네졌다는 증언들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협상 문제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서의 검증작업을 통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양국 국민들이 이를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정식 외교루트를 통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 내지는 내용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에서 동북아 외교관계와 한·일 관계 정책자문을 맡았던 그는 대일 관계의 전향적 개선을 위해 일본 문제 전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준국가기관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놨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현안 등 일본 문제 전반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는 정책집단이 준국가기관의 하나로 개편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 변수를 미국 변수의 소속 변수로 간주해 온 종래의 한국 내 관습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이 파트너십을 회복하고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양국 정부에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호사카 교수는 “기본적으로 양국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호관계 구축이 기본적인 틀이고 우호관계 속에서 각종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 일본 정부는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역사적으로 민감한 문제들로 상대국 국민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외교적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놨다.
이를 위해 양국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호사카 교수는 “양국의 기본조약·기본협정인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협정을 토대로 외교적 태도를 갖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이다. 한·일기본조약이나 한·일협정의 내용 중에는 한쪽 주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쟁점들이 많다. 현재도 양국이 협의하면서 가야할 쟁점들이 있기 때문에 외교라인에서 그런 중요한 내용들을 잘 파악해 한·일 간 외교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양국 정부는 양국 국민에 대한 설명의 책임도 다해야 한다”며 “반일감정, 반한감정을 자극해 자국 정부에만 유리하도록 하려는 왜곡된 브리핑 태도 등을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바람직한 공조 방안을 묻는 질문에 호사카 교수는 ‘북한문제 공조를 위한 양국 민관 포럼’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포럼의 의견들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야 하고 이는 앞서 언급한 일본전문 기관이 주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일 간 군사적 현안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이 국회와 민간, 언론 등에서 공론화되어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간 군사적 문제는 중국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한국은 국익을 위해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일본이나 미국은 해양세력으로서의 요구를 해오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반영한 국익 중심의 정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사카 교수는 이어 “한국은 연해지역 국가로서 러시아나 중국 같은 대륙세력과 미국이나 일본 같은 해양세력 사이에 낀 가장 손해가 많은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일본의 요구에 쉽게 응하면 국익에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일본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지정학적·군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너무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일본 측에도 이해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갖고 있는 정보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사고가 한국에 매우 부족하다”면서 “재일 교포가 갖는 대 북한 정보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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