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

최근 들어 ‘비하 광고’라는 키워드를 더욱 접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광고 속에 무언가를 비하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켜야할 선을 넘어 그 비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경우를 무시한 채 멈춰지지 않고 무례한 광고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기고]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
상지대 광고홍보전공 4학년 김다슬



소비자를 집중시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광고가 되기 위해서는 신선한 재미가 필요하다. 제품 위주의 설득이 아닌 재미의 의미를 부여하여 브랜드 회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화제성을 위한 재미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을 때 그 광고는 재미도 없고 설득하기 위함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웃음을 주기 위한 광고가 누군가에게는 웃음거리로 악용되어 메시지가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광고가 재밌는지에 대해서 명백한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대신 지켜야 할 기준의 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있다. 웃음을 유발시키기 위함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불쾌함을 느끼는 소비자는 없어야 한다. 제품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광고는 설득을 위한 속삭임이지 속상하게 하는 설득이 아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생겨날 비하 광고를 멈추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광고주의 원활한 소통이 요구된다. 비판받아야 할 광고는 그에 맞게 비판받아야 하고, 비판받았을 때 비로소 의견을 수용하여 뉘우치기 보다는 처음부터 신중하고 끊임없는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비하 광고에 대해서 비판하는 의견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무뎌지는 것이다. ‘너만 조용했다면 걸리지 않았을텐데.’ 같은 맥락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무뎌짐이 결국 익숙함을 불러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민감한 반응이라 생각되는 악순환이 작용될 것이다.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을 틀리다고 해석하여 광고하였을 때 비하 광고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 해석은 주로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사고방식에서 생겨난다. 비하 광고 앞에 붙는 단어에는 약자가 많다는 소리이다. 약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광고 효과는 무엇인가. 소수를 위해 다수를 낮추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낮추는 저울질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개그적인 요소를 순수하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런 깨끗한 광고를 보고 싶다. 조롱 혹은 비하적인 내용에 웃는 대중은 어디 있고, 순수한 재미에 웃지 않을 만큼 무감각한 대중은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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