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이가 아프기 전이 일상은 이랬다.'둘째 딸이 행여 깰까봐 조심스레 큰 딸을 깨워 세수를 시킨다. 아내는 이미 출근한 지 오래다. 큰 딸을 학교 앞에 내려주고 20km 거리의 출근길을 15분 만에 주파해 기자실에 도착한다. 기재부 박미란 실장님이 준비한 주먹밥과 토마토 쥬스로 빈 속을 채우고 조간신문을 살핀다. 동료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뭘 쓸지 고민한다. 일하는 중간 중간 둘째딸이 외할아버지 전화로 영상전화를 해온다. 무시하고 기사를 쓴다. 아내가 카톡으로 직장생활이 고달픔을 토로한다.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마감을 끝낸 뒤 친한 취재원과 차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늘은 저녁 약속이 없는 날. 둘째가 좋아하는 킨더조이 초콜릿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한 달 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전과 달라진 점은 출근길에 휴직을 한 아내가 배웅을 해주고, 인영이의 영상전화를 전화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는 것. 그리고 만나는 이들 모두 인영이의 안부를 묻고 수십번 반복되는 질문에 기쁘게 인영이의 상태를 전한다.
“퇴원 이후 잘 먹고 잘 놀아요. 열도 안 나고 어제 밤부터는 춤도 추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기도해주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은 오후로 갈수록 무거워진다. 내일은 인영이가 다시 2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달 만에 찾은 일상은 하루면 다시 없어진다.
오후 5시 병원 병실담당 간호사에게 전화가 온다. 대기 환자가 많아 내일 입원이 힘들다고 한다.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기다려 입원하던지 1인실을 사용해야 한단다. 1인실 입원비를 물어보니 57만원이라고 친절히 대답해준다. ‘이분들이 내가 정말 부자인줄 아는구나.’
당연히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진행돼야 할 항암치료인데 병실이 없으니 무작정 기다리던지, 아니면 왕복 5시간의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면서 어른도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아이가 아픈 것도 억울한데, 아이를 제대로 치료해주기 위해서는 하루 일당 57만원짜리 직업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고도의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내일도 이 불안한 일상은 계속될 듯 하다.
그래도 퇴근길은 행복하다. 집에 가면 “롸면”이라고 외치며 나를 졸졸 따르는 인영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 운전대를 잡으며 스스로 몇번이고 다짐한다.
"인영아, 아빠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인영이 잘 치료받게 해서 빨리 낫게 해줄게. 아빠 믿지?".(3월7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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