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다

정현종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됐다. 지난 3년여의 세월을 통해 그 섬을 이어주는 다리가 정(情)이라는 것을 알았다. 2018년 9월17일부로 인영이의 길고 길었던 항암치료가 종결됐다. 인영이는 마지막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가슴에 삽입한 포트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

2018-09-18 15:34

지난주부터 아내가 복직했다. 인영이 치료가 한 달 남았지만 더 이상 남은 휴직이 없었다. 인영이는 아내가 복직한 첫날 휴가를 낸 아빠와 병원에 갔다 왔다. 아빠와 가니 장난감이 생겨 좋다고 했지만 '아빠육아' 첫날 바로 감기에 걸렸다. 장인어른이 육아를 도와주신다 해도 매일같이 있을 수 없는 일. 제사준비때문에 못오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내는 7시30분에 출근하고,

2018-09-04 10:01

항암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 골수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새벽 5시 잠든 인영이를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인영이는 이제 커서 자기 전에 허리주사 맞기 싫다고 병원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다 잠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인영이는 3년여의 시간만큼 솜이 죽어 ‘노인’인형이 된 봉구를 안고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내는 인영이에게 이제 마지막 허리주사고, 마취하기 때문에 하나도 안 아플 거라며

2018-08-19 12:23

평온한 일요일이었다. 퇴근이후 대전 어머니를 뵈러갔다. 가족 모두 가려 했는데 인영이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혼자 갔다. 인영이는 2주 전부터 인후염으로 항생제를 먹고 있었다. 언니와 주거니 받거니 열이 났지만 그리 심하진 않았다. 전날인 토요일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인영이는 다 나아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뵈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전화가 왔다.

2018-07-17 11:10

며칠 전부터 인영이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곧 아빠 생일인데 선물 뭐 해줄거냐고. 인영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생일 전날 저녁, 인영이가 자신이 정성스레 모은 저금통을 가져왔다. 약 잘 먹고 치료 힘들 때마다 손에 쥐어 준 동전을 모은 저금통이었다(참고로 인영이는 지폐보다 동전을 더 좋아한다). 감격해하고 있을 때 엄마가 흥을 깼다. “인영아, 그거 1년 전에 엄마 생

2018-07-05 18:12

오늘은 인영이가 1달에 1번 ‘꼬마 빈(용량이 적은 빈크리스틴 항암제)’ 맞는 날이었다. 인영이는 격주로 병원에 가는데 요일은 매주 화요일로 고정돼 있다. 인영이는 병원가는 날을 좋아한다. 일상이 되기도 했거니와 ‘동기’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 입사 동기, 군대 동기, 조리원 동기, 사회에 많은 동기들이 있지만 인영이에게는 비슷한 시기에 발병을 해서 같은

2018-06-20 02:55

신병교육대의 마지막 코스는 밤샘 행군이었다. 훈련병들에게 가장 두려운 코스였다. 하늘같았던 조교는 전날밤 퍼지지 않고 행군을 무사히 마치는 비법을 알려줬다. 바로 앞 전우의 군화 뒤꿈치만 보고 걸으며 눈을 들지 말라는 것. 비법은 간단했지만 정말 효과가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어두운 밤길도 느낄 새 없이 새벽 동이 터오고 20km 행군은 무사히 끝났다. 인영이 발병 초기

2018-05-31 11:09

서울성모병원 소아암병동은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곳이다. 그만큼 소아백혈병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과 시설을 자랑하는 병원이다. 인영이는 오늘부터 3일간 그곳에서 집중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집중항암에서 중요한 치료는 척수시술이다. 허리에 바늘을 꼽아 척수 액을 뽑아 암세포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예방항암제를 투약하는 시술이다. 인영이는 오늘 척수검사를 실패했다. 척수

2018-05-23 14:38

3번째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인영이의 생일기념 여행이었다. 청주공항으로 시작해서 제주도까지 가는 비행기, 렌트카 차량, 호텔까지 가는 길까지 모든 것이 신나고 설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 나와 동생은 푹신한 침대에 풀썩 누웠다. 엄마 아빠는 호텔 수영장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영장과 호텔 안에 있는 키즈카페에선 인영이의 웃음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둘

2018-05-23 10:18

인영이는 2주 전부터 항암제 투약 용량을 높였다. 백혈병은 말 그대로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병이다. 정상 백혈구 수치는 4000~1만인데 그 이상이 지속되면 백혈병으로 의심을 받는다. 인영이도 첫 발병 때는 백혈구 수치가 1만을 훌쩍 넘었다. 이후 암세포를 없애는 관해 치료를 한 뒤 백혈구 수치를 4000미만으로 유지하는 항암유지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한 달여 전부

2018-05-09 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