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와 행정부 충돌 현실화되나… 입법만능주의 우려도

공무원연금개혁 처리과정에서 ‘끼워넣기식’으로 이뤄진 여야의 국회법 개정안 통과, 이에 따른 청와대의 강력반발 등으로 시작된 행정·입법부 충돌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야당은 앞으로 법률과 상충 소지가 있는 정부 시행령을 손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정부는 마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처럼 상위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행정입법을 파악해 수정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31일 “상임위별로 문제되는 행정입법이 있는지 검토를 시작했다”며 “법률이 위임한 권한을 넘어선 시행령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벼르고 있는 분야는 의료민영화, 임금피크제, 구조조정, 누리과정 예산부담 문제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강제적으로 편성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추진하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다.

정치권에선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던 현 정치체제가 입법부의 제자리 찾기로 회귀하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의 독주가 장기간 지속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의미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전문가는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한 막강한 견제수단까지 가지게 되면 입법부 독재로 가게 되는 것 아니냐”며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에 명확히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헌법기관의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의 함량과 질이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접수된 전체 법안 중 94% 가량인 1만3000여건이 의원발의 법안이지만, 상당수는 의원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나 관심을 끌기 위한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것이다. 국회 역시 정부가 시행령을 비롯한 행정입법을 통해 모법(母法)을 무력화한 사례가 많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국가재정법 시행령의 경우 모법은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 신규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2009년 시행령 개정으로 재해예방사업 및 국가정책사업을 예외로 해 4대강 사업의 핵심공사가 조사대상에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와는 별개로 앞으로 정부 입법 추진과정에서 또다른 입법만능주의의 ‘폭탄’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데 특히 우려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법안 처리가 원천 봉쇄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여야 협상과정에서 이번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야당의 ‘끼워넣기’ 법안 수정 요구 등이 계속 이뤄진다면 앞으로 행정부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은 공무원연금과는 관련이 없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기초연금 확대,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건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 국회법 개정 등을 계속 내놓았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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