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손선홍] 日帝 희생자 추모는 못할망정
“끊임없이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국가라야 진정한 존경을 받는 법”
지난 1월 27일 95세 고령의 한 러시아인이 독일 하원 의사당 연단에 섰다. 그의 앞에는 요아힘 가욱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총리, 상하원 의장, 연방헌법재판소장과 의원들이 앉아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는 그를 하원의장이 부축했다. 이 러시아인은 작가 다니일 그라닌이었다.
그는 1941년 9월 8일 이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900일간 봉쇄하는 동안 의용군으로 싸우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다.
그라닌은 장기간 봉쇄로 인한 레닌그라드의 재앙적인 상황에 관해 회고했다.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겼고, 난방시설은 작동하지 않았다. 폭격으로 불이 났으나 불을 끌 물이 없어 도시는 며칠 동안 불탔다고 했다. 생필품 공급은 최악이어서 굶주림이 심했는데, 1942년 2월 어느 날 하루에 약 3500명이 굶주림과 추위로 죽었다고 했다. 군인은 당연히 군인을 상대로 싸워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군인 대신에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고 했다. 봉쇄 기간 중 레닌그라드 시민과 군인 등 약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라닌이 참석한 이 행사는 독일이 매년 1월 27일 ‘나치 희생자 추모일’에 갖는 행사다. 이날은 소련군이 1945년에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를 해방시킨 날이다.
독일은 지난 1996년 당시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의 제의로 이날을 ‘나치 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하여 추모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 행사에는 대통령, 상하원 의장, 총리와 연방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상 최고위 인사 5명이 모두 참석한다. 독일이 추모일을 지정하며 행사를 갖는 이유는 명백하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자를 추모하고, 어두운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해서다.
독일이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일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어두운 과거를 사죄했다. 40년도 더 지난 2013년 8월 20일 메르켈 총리는 다카우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인 막스 만하이머의 초청으로 이 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했다. 메르켈은 “젊은이들은 지난날 독일에 의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며, 어둡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다음 세대에 꾸준히 전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4일에는 가욱 대통령이 프랑스 중서부 작은 마을인 오라 두르 쉬르 글란을 찾았다. 1944년 6월 10일 나치 친위대가 이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고 총을 쏘고, 독가스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642명이 숨졌고, 6명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가욱 대통령은 “이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는 독일 정부의 명령으로 독일군이 저지른 것”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함께 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가욱 대통령이 이곳을 찾은 것은 두 나라 간에 화해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독일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유럽을 움직이는 핵심 기구인 유럽연합(EU)이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와 같은 독일의 끊임없는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눈을 돌려 아시아를 보자. 지난날 일본은 이웃 나라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과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의 만행을 사죄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 더 나아가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지난 2월22일에는 일본의 지방정부가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행사를 또다시 개최하고, 중앙정부는 이러한 행사에 고위급 인사를 작년에 이어 다시 참석시키는 도발을 강행하였다.
오늘날 독일은 과거를 반성하며 유럽연합과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다. 일본은 독일이 ‘나치 희생자 추모일’까지 지정하며 매년 국가 원수와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어두웠던 과거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있음을 본받아야 한다.
손선홍 주 함부르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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