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역사 치유의 현장 (5)]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피스메이커들 (하)
전쟁·분단 등 같은 상처 한국인들 이-팔 평화 만들기 활발
“팔레스타인에서 살면 살수록 이 땅이 한국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태윤 선교사는 지난 11일 베들레헴 성탄교회 앞 광장이 눈 속에 파묻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강 선교사는 1990년 이스라엘에 와 팔레스타인 지역인 베들레헴에서 20여년간 선교하고 있다.
그가 처음 베들레헴에 정착한 때는 제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무력 봉기)때였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물러가길 원했던 사람들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졌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최루탄과 총을 쏘았다. 몇 년 전 민주화운동이 한참 벌어졌던 대한민국의 거리 풍경과도 비슷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자살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졌고, 이스라엘은 탱크와 장갑차, 헬기, 전투기를 동원했다. 제3자이자 선교사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강 선교사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라를 잃은 경험이 있는 한국인으로서, 아랍 지역에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처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기 땅을 잃고 갖가지 차별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볼 때도 마음이 아파요. 일본에 억압 받던 식민지 시절의 우리 부모님들이 저렇게 사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베들레헴에는 한국과 팔레스타인 간의 ‘우정의 길’이 있다. 강 선교사가 3년째 건립하고 있는 한국문화원과 베들레헴 시내로 이어지는 600m의 도로에는 태극기와 함께 한글과 아랍어로 ‘한-팔 우정의 길’이라고 적혀 있다.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외국의 이름이 붙은 지명이다. 우정의 길 명명식에는 팔레스타인 문화부 장관과 시장이 참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내년 초 문을 열 한국문화원에도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강 선교사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돌보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태권도도 가르치고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복합시설이 들어선다”며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이곳에 머물면서 첨예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곳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선교사가 보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한반도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스라엘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북한의 핵무기가 이란이나 다른 중동 국가에 흘러들어가 자신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안보에는 치명타다. 게다가 현재 이 땅에서 진행 중인 분쟁 역시 남북한 문제와 닮은 점이 많다.
그는 “이곳이 여러 종교의 성지라고 하지만, 이 땅 자체가 거룩하다거나 신비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가 이곳에서 탄생했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이들이 여기 살았기 때문에 성지가 된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종교적 건축물이나 기념물, 미신적인 전설이나 땅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작 여기 사는 사람들이 겪는 갈등과 이를 해소할 평화의 의미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구상에서 팔레스타인인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에요.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다 겪었잖아요. 이스라엘인의 가장 큰 상처인 망국과 건국의 고난 역시 한국인만큼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평화를 위해 진심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MSF)의 예루살렘 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아진(30)씨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제가 사는 곳을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한국인 교민들은 깜짝 놀라면서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어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물가가 더 저렴해서 좋은 점도 있어요.”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무조건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한반도의 분단과 긴장을 전하는 뉴스 때문에 한국이 위험한 곳이라고 여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분단된 상황에서 교류가 철저히 막혀 있는 남북한의 현실은 어떤 점에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보다 더 경색돼 있다.
에티오피아와 예멘, 대지진이 난 일본 등에서 일해온 김씨는 지난 7월 예루살렘에 왔다. 다른 분쟁지역과 비교하면 이곳은 갈등이 오래 지속돼 모두가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생활조건은 더 나은 점도 있지만, 일상에 고착화된 편견이나 증오와 마주칠 때면 더 마음이 아프다.
“한번은 전철에서 러시아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이것저것 물어보시면서 참 친근하게 대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제가 동예루살렘에서 내린다고 하니까 갑자기 얼굴 표정이 싹 바뀌면서 말을 뚝 끊어버리는 거 있죠. 편견이 참 무섭단 생각을 했어요.”
MSF가 차량에 아랍어로 단체 이름을 적었다가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에서 돌을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수십년간 쌓인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는 언제까지 완치할 수 있다고 가늠하기 어렵고, 성과를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그러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기업에 다니다 그만둔다고 할 때 모두들 말렸어요. 숨이 막힐 것 같았거든요. 사실 MSF에서 하는 일도 예전에 하던 것과 비슷하지만 여기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전 세계에서 저보다 훨씬 유능한 인재들, 얼마든지 큰 돈을 벌 수 있는 의사분들이 기꺼이 위험한 곳까지 와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죠.”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의 박선교 전도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에큐메니컬 동반 프로그램(EAPPI)’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참여했다. EAPPI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를 위해 분쟁 현장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공식 프로그램이다. 올해 박 전도사는 2월까지 베들레헴에 머물면서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등하교를 돕고 유엔 등에 보고될 리포트 작성에 참여했다.
“EAPPI의 목적은 양쪽의 화해를 위해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인데 현재는 팔레스타인이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 보니 이곳 주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됐죠. 제가 머물 때는 마침 이스라엘의 총선을 앞두고 서로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정도로 갈등이 높아져 저희도 힘들었습니다.”
학교를 오갈 때에도 검문을 받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학생들을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과 자주 부딪쳤다. 실탄이 든 총을 가진 군인과 돌멩이를 든 학생들 사이에 서서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베들레헴이 2000년 전 예수가 세상에 평화를 전하기 위해 태어난 곳인데 이곳이 오히려 평화가 간절히 필요한 곳이 되었어요. 우리가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지요.”
영국 스위스 호주에서 온 60대 할머니들과 콜롬비아에서 온 같은 또래 청년들이 박 전도사와 함께 현장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막상 이곳에 와 보니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모두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기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꼭 다양한 분들이 팔레스타인을 찾아가서 현장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 좋겠어요. 그 자체가 평화를 만드는 일이고, 평화를 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거든요.”
예루살렘·베들레헴=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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