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재앙' 초미세먼지 농도 치솟아… 사흘째 중국발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 왜?

5일 오후 2시3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 10번 출구 앞. 2∼3분 지켜보는 동안 출구를 빠져나간 사람들 중 20명 가까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노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이들도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거나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려 입과 코를 막고서야 거리로 나섰다. 대학생 이모(25)씨는 “기분 탓인지 자꾸 기침이 난다”고 했다.

◇사흘째 계속된 중국발 재앙=이날 한반도 대기는 먼지덩어리에 둘러싸인 듯 하루 종일 뿌옇게 흐려 있었다. 지난 3일부터 중국 베이징과 산둥반도에서 서풍을 타고 날아온 고농도 미세먼지가 사흘째 전국 대부분 지역의 하늘을 뒤덮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미세먼지(지름 10㎛ 이하의 작은 먼지) 예보는 크게 빗나갔다. 환경과학원은 오전 잠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걷히고 일평균 농도가 ‘보통’(31∼80㎍/㎥)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으나 수도권과 충청권은 오후 내내 대기환경 기준(하루 평균 100㎍/㎥)을 훌쩍 넘는 고농도 먼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실측한 서울 전역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오전 8∼10시 120㎍/㎥에서 1시간 뒤 131㎍/㎥로 오르더니 오후 11시 최고 215㎍/㎥까지 치솟았다. 이는 예보 등급상 ‘보통’보다 세 단계 심한 ‘매우 나쁨’(201㎍/㎥ 이상)에 해당한다. 경기도는 더욱 심각해서 오후 한때 285㎍/㎥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노약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장시간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수준이다.

서울시는 오후 4시를 기해 사상 처음 초미세먼지(지름 2.5㎛ 이하의 아주 작은 먼지) 주의보를 발령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실외 활동을 자제토록 당부했다. 미세먼지와 뒤섞인 짙은 안개로 김포 6편, 제주 8편, 광주 5편 등 국내선 20편이 결항했다. 국제선은 정상 운항됐다.

◇미세먼지 왜 안 빠지나=예측과 달리 미세먼지 농도가 수직 상승한 건 안개와 안정된 대기의 두 요인이 결합한 탓이었다. 환경과학원 홍유덕 대기환경연구과장은 “당초 중국발 오염물질이 바람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리라 예상했으나 대기가 안정되면서 대기 중에 오염물질이 계속 남아 미세먼지가 고농도로 유지됐다”고 해명했다. 바뀌지 않은 기압 배치와 강하지 않은 바람, 안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민간 기상예보기관 K웨더 반기성 예보센터장도 “이동성 고기압이 계속 자리 잡고 있으면 역전층(온도가 더 높은 층)이 생겨 공기가 위로 확산되지 않는다. 여기에 안개가 끼면 미세먼지와 안개 속 물방울이 결합돼 부피가 커지면서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한반도를 습격한 미세먼지에는 초미세먼지가 절반 이상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과학원은 수도권 미세먼지 성분을 분석한 결과 호흡기로 걸러지지 않고 폐세포에 곧바로 침투하는 초미세먼지가 60∼80%나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량의 유독성 오염물질이 검출됐는데 질산염이 평소의 6.4배, 황산염이 1.9배, 유기탄소와 무기탄소가 각각 3.3배와 3.1배나 나왔다.

고농도 미세먼지는 6일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환경과학원은 수도권 ‘약간 나쁨’(81∼120㎍/㎥), 충청·강원권은 ‘보통’의 농도를 예측했다.

◇추위와 미세먼지, 이중 습격 받은 천식환자들=보건 당국은 날이 추워진 12월에 미세먼지가 급증하면서 천식 환자가 늘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천식 환자 수가 가장 많은 달은 꽃가루와 황사 등이 기관지 점막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4월(45만6000명)과 찬공기가 기도를 수축시키는 12월(44만6000명)이다. 하지만 올해는 봄의 유발인자인 미세먼지와 겨울철 찬공기가 12월에 한꺼번에 겹쳐서 나타나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태원 정부경 전수민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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