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잠들지 않는 순례자

낯선 곳을 여행 하던 한 여행객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그만 날이 어두워지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묵고 갈 여관을 찾았다. 어느 여관을 찾아 들어가서 짐을 푸는 순간 그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만 ‘아차’ 하는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들어온 여관은 평범한 여관이 아니라 도둑들의 소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섣부른 행동이 화를 자초할까 싶어 마음을 진정시키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결국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에 조용히 여관을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밤에 그는 한 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짐을 가슴에 꼭 품은 채 고스란히 뜬 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잠이 들지 않도록 자신을 꼬집으면서 잠을 쫓아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이것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비유의 메시지다. 이 여행자가 누구일까? 바로 이 세상 순례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렇다면 이 여관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다. 루터가 하고 싶은 말은 선명하다. 이 세상은 마귀가 왕 노릇하는 하나님의 적성 국가다. 그야말로 하나님 백성들을 집어삼키려는 도적들이 우글거리는 여관과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마치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여행자와 같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발을 뻗고 잠을 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것이다. 루터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진정한 하나님백성이 이 세상에서 영적인 잠을 자는 것이 가능한가? 루터의 대답은 ‘불가능’이다. 그렇다. 영적 긴장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다. 김빠진 사이다는 맹물보다 못한 것처럼, 영적긴장이 빠진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러나 무서운 사실이 무엇인가? 영혼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세상을 뒤집을 것 같은 ‘성령충만’과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영적침체’가 불과 한걸음 차이다. 엘리아를 보라.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죽은 자를 살리며, 이방선지자 850명을 혼자서 대결하던 영적 영웅이 단 한 순간에 ‘겁쟁이 도망자’로 나타났다. 또 2006년 5월 미국 교계에서 들려온 소식에 나는 경악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미신과 죽음의 도시 분위기를 바꾸어놓은 위대한 영적 거인이 하루아침에 동성애자로 낙인 찍혀 물러나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동안의 그의 사역이 거짓일까. 아니다. 그러나 영적충만과 영적침체 사이의 거리는 예상보다 너무 짧았다. 나는 잠들어 있지 않는가. 추운 날씨에 산에서 조난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산에서 잠드는 것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 자기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잠을 쫓는다. 오늘 나의 뺨을 사정없이 치면서라도 영적인 잠을 쫓을 생각은 없는가.

<서울 내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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