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차창훈] 중국 건국 64주년과 공산당
지난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일이었다. 건국 64주년 기념식이 비가 오는 가운데에 천안문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시진핑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등 정치지도자들은 천안문 인민영웅기념비에서 헌화 후 묵념을 하는 등 중국 최대의 국경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이 광장에서 “중국 인민은 일어섰다”고 선언한 지 64년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대혼란과 후퇴를 겪기도 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강대국으로 일어섰다.
중국 굴기의 중심에는 중국 공산당이 존재한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후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장제스(莊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의 공격으로 절멸되다시피 하였지만 대장정을 거쳐 마침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홍군(紅軍)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절대적인 영도 원칙을 확립하고 훗날 인민해방군에 대한 절대적인 영도를 확립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덩샤오핑의 말과 같이 “중국은 공산당이 영도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사업도 공산당이 영도한다는 원칙은 흔들릴 수 없으며, 만일 흔들린다면 중국은 분열과 혼란을 겪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결코 현대화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921년 57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 공산당은 건국 후 1956년 제8차 당대회 시 1073만명, 그리고 2012년 제18차 당대회 시 8260만명(전체 인구의 약 6%)으로 성장하였다. 공산당은 국유기업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있고, 노동조합(總工會) 여성단체(婦聯) 사영기업가단체(工商聯) 청년단체(共靑團) 등 사회조직과 단체를 체제내로 흡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는 정치권력(공산당), 지식(지식인), 자본(사영기업가)이 비교적 강고하게 통치 연합을 형성하여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일반 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영기업가의 경우는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의 삼개대표(三個代表)론이 당헌 수정을 거쳐 국가의 공식적인 지도 이념으로 합법화되면서 이들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게 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산당이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하는 과정이다. 공산당의 최고지도자 집단뿐만 아니라 당과 정부의 간부 승계과정은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후계 세대의 새로운 간부들은 능력, 자질, 성과 등의 제반 사항에 대한 ‘고찰(考察)’을 통하여 승진하거나 도태된다. 당교(黨校)는 공산당 당원을 재교육하여 그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공산당의 당원은 한 단계 더 승진하기 위해서 중국 전역에 있는 당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교육을 받고 졸업을 해야 한다. 물론 이 교육과정에서 다른 당원들과 친교를 맺고 ‘관시(關係)’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중국 공산당이 발전시킨 인사의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정치 엘리트를 검증하고 충원하는 방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실현시킨 눈에 보이지 않는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통치 체제의 합리화와 통치 능력의 강화 등 정치 제도화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사상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보장 등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시작되면서 중국 정부는 사회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반체제 인사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과 탄압을 추진했다. 2008년 공산당 일당 독재 철폐 등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08 헌장’을 주도한 류샤오보(劉曉波)가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을 하게 되자 중국 정부는 인권과 민주의 확대를 요구하는 일부 지식인에 대해 구금과 체포로 맞섰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성장하는 사회 계층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능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점점 더 직면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민주주의의 문제를 미래에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가 매우 주목된다.
차창훈 부산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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