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그늘… 孤·貧·病 못이겨 세상 버리려 했지만

김정란(가명·85) 할머니는 2006년부터 수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혼자 살고 있는 지하 단칸방에서 연탄불을 피운 뒤 잠들려고 했던 적도 있고, 산에 올라가 구른 적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예전 후두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 잔병치레도 계속됐고, 생활고도 심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김 할머니가 고독을 느끼는 이유였다. 식당일을 하며 어렵게 자녀 6명을 키웠지만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찾아오는 자식들을 보며 김 할머니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26일 “내가 자살하면 자식들이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서 절대 자살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1년 자살로 사망한 60대 이상 노인은 5468명이다. 자살 시도자 5명 중 1명꼴로 사망한다는 통계를 고려하면, 한 해 2만2000여명의 노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셈이다. 경북대 보건복지학과 김유진 교수는 자살을 시도했던 노인 35명을 심층 면접해 지난 2월 사회복지학회에 ‘자살시도 노인의 일상 복귀 경험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자살 당시를 떠올리며 “늙어가며 겪는 상실감과 절망감 때문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살을 시도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노인 9명은 자살 실패를 다행으로 여기며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이들이 마음을 고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녀’였

다. 자식들이 주변으로부터 ‘부모가 자살했다’며 수군거림을 당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박모(80) 할아버지는 “내가 자살하면 애들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수년 전 콜레라를 앓던 딸을 잃고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던 한 할머니는 “딸이 나를 저세상으로 데려갔다는 소리를 안 듣게 하려고 자살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자녀 때문에 목숨을 끊지 못한 노인도 있다. 막내가 오랫동안 실직 상태라는 한 할머니(89)는 “막내가 딴마음 먹지 않게 돌보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지속적인 도움과 지지도 이들이 희망을 품는 데 큰 힘이 됐다. 박모(79) 할아버지는 “(노인돌보미가) 나를 많이 걱정하는데,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할아버지는 “베란다를 꽃밭으로 만들고 여기에서 차도 마시고 열대어도 기르고 싶다”고 했다. 주변의 지지가 이 할아버지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 한몫을 한 것이다.

노인 22명은 자살 시도 당시 느꼈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죽는 과정이 더 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 할머니(80)는 “삶에 희망을 찾았다기보다는 살아있는 것에 그저 감사하며 사는 게 낫다”고 했다. 자살에 실패한 것을 아쉬워하며 다시 시도할 의향이 있는 노인은 4명이었다.

김 교수는 “자살을 시도했던 노인들은 절망에 빠진 상태로 머무르지 않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이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사회적 지지망을 형성하고 자기 성찰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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