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상선약수

Է:2013-05-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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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흔하게 듣고 보지만 사실은 그 뜻을 깊이 알고 있지 못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아닌가 한다. 노자 도덕경 8장의 첫 구절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이 장은 모두 물의 착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가령 두 번, 세 번째 구절은 이렇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동양철학 전공자들은 도가를 치켜세우길 좋아하지만 물의 겸손, 유연성은 사실 서양철학에서도 간과된 적이 없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 사람인 철학자 탈레스도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의 근원을 물이라고 단언했다. 경험론적으로 파악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종교적 설명과는 다른 세계관을 보여줘 그는 유럽 철학의 비조로 여겨지고 있다.

물과 관련해 가장 극적인 인물은 아무래도 신약성서에 나오는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일 것이다.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며 유대인들을 일깨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 운동을 펼쳤으며 이때 예수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미 고대 사람들도 생명이 곧 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 아닐까.

이 같은 물의 속성을 간파해 물처럼 처신하면 만사에 뒤탈이 없다는 진리는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우리 삶에 깊이 배어 내려왔다. 우리의 옛 이야기에도 과거 보러 한양에 간 남편의 장원급제를 빌거나, 자식이 가출해 소식이 없거나,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모를 경우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인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지 않았던가. 모두가 물의 정령성(精靈性)에 기댄 행동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약자를 무한정 윽박지르는 이른바 ‘갑을문화’로 시끄럽다. 서양식 계약문화에서 비롯된 ‘갑’과 ‘을’이 동양적인 군림문화로 둔갑한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쓰는 용어인 이 말은 평등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 쪽 당사자를 ‘갑’이라 부르고, 다른 당사자를 ‘을’이라고 칭하며 서로의 책임과 권한이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분란이 생기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도 크게 보면 상선약수 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더러움을 씻어주기를 좋아하는 물을 생각한다면 어찌 저토록 오랫동안 제 주장만 고집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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