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Է:2013-04-0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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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정원교]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최근 명문 중국음악학원 박사과정 모집 요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이 났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해외 순방에 동행한 펑리위안(彭麗媛) 덕이었다. 그는 이 학교 초빙교수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다. 수많은 학생들이 다투어 펑리위안한테서 배우고 싶어한 것이다.

황하(黃河)가 범람하는 평원에 위치한 산둥성 윈청현은 수호지 발원지로 유명하다. 시골 마을인 이 곳이 지금 뭇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펑리위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윈청현 주민들은 요즘 새삼 어깨를 펴고 다닌다고 한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편집부국장을 지낸 저우루이진(周瑞金)은 중국 정치에 있어서 시대 구분을 4단계로 한다. 위인(偉人) 정치시대, 강인(强人) 정치시대, 후강인(後强人) 정치시대, 상인(常人) 정치시대가 그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통치한 27년(1949∼1976년)과 덩샤오핑(鄧小平)이 다스린 11년(1978∼1989년)은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한 명이 거대 중국을 이끌고 간 시기였다. 마오를 위인, 덩을 강인으로 본 것이다. 장쩌민(江澤民)의 13년(1989∼2002년)과 후진타오(胡錦濤) 10년(2002∼2012년)은 후강인 정치시대에 해당한다.

저우루이진은 시진핑 시대가 열리면서 비로소 ‘보통 사람(常人)’이 지도자가 됐다고 본다. 시대 흐름에 따라 지도자의 절대적 권위가 옅어지면서 집단지도체제 성격이 강해지는 쪽으로 변화돼 온 셈이다. 그는 1991년 황푸핑(皇甫平)이라는 필명으로 ‘개혁개방을 위한 새로운 사고’ 등 평론 4편을 써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들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위한 전주곡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신중국 출범 뒤 디이푸런(第一夫人·퍼스트레이디)이 보여온 처신은 이러한 정치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연극배우 출신인 마오의 네 번째 부인 장칭(江靑)은 중국 전체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린 문화대혁명 때 남편의 권위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1991년 무기징역형을 살던 옥중에서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덩샤오핑 부인 줘린(卓琳)은 베이징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혁명에 투신,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서 자신보다 12살 많은 덩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덩의 비서 역할만 충실히 했다. 장칭의 전횡에 염증을 느끼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 덩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장쩌민 부인 왕예핑(王冶坪)은 철저한 은둔형이었다. 그는 남편과 동향(장쑤성 양저우)으로 상하이외국어대를 졸업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류융칭(劉永淸)은 후진타오와 칭화대 수리학과(水理學科) 1959년 같은 학번이지만 남편보다 두 살 많다. 네티즌이 ‘컴퓨터광’으로 부를 만큼 컴퓨터에 밝고 서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은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가계는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맡은 일만 잘하세요.” 유명 가수 펑리위안이 자신의 수입으로 살림을 꾸리겠다며 남편이 탐관(貪官)이 되지 않도록 했다는 얘기다.

“펑리위안은 최고지도자도 우리 주변 인물처럼 가정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중국 사람들은 펑리위안이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 남편과 팔짱을 낀 장면을 주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서 권위주의가 조금씩 엷어져가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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