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농부가 쓰던 2류 언어였는데… 영어, 너 많이 컸다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빌 브라이슨/휴머니스트
영어의 글로벌 파워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 세계 영어 사용자는 3억 명에 달하고, 영어 단어는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골 경로당 할머니들 대화에서 ‘나는 아이돈노(I don’t know)야’라는 영어 표현이 튀어나올 정도니까. 영어 수요는 갈수록 늘어 영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장산업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태초의 영어는 어떠했을까. ‘박학다식함+유쾌한 글쓰기’를 무기로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낳았던 빌 브라이슨이 이번엔 그 궁금증에 대해 썼다. 영어의 역사와 그 현황에 대해 봇물 터지듯 방대한 지식이 쏟아진다.
영어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로마 군대가 영국에서 철수한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앵글로색슨인에 의해 시작됐다. 하지만 그들은 table(탁자) pillow(베개) 같은 일상용품 단어는 로마인의 것을 차용해야 했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조악했던 종족이었다.
11세기 노르만인의 정복 이후 영국의 노르만인 사회는 프랑스어를 말하는 귀족계급과 영어를 말하는 농민계급으로 나뉘어 졌다. 영어는 말하자면, 농부들이 사용하는 2류 언어였던 셈이다. 그때 언어의 계급적 특성은 현존 영어에서도 확인된다. baker(빵집 주인), shoemaker(제화공), miller(방앗간 주인) 같은 평범한 직업은 앵글로색슨식 이름을 가진 반면, mason(석공), tailor(재단사), painter(화가)처럼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프랑스식 이름을 갖고 있다. 또 sheep(양), cow(암소), ox(황소) 같이 들판에서 기르는 동물은 영어식 이름을 갖게 됐지만, 일단 요리돼 식탁에 오르면 대개 beef(쇠고기), mutton(양고기), bacon(베이컨)처럼 프랑스식 이름이다.
수세기에 걸쳐 농부의 언어로 무시당하던 중세의 영어는 ‘켄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제프리 초서의 시대를 거치면서 현대영어로 발전했고, 16세기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의해 만개했다. 마침내 신세계로 건너가면서 영어가 오늘의 글로벌 패권 지위를 얻는 초석을 다지게 되는데, 그런 영어의 면면한 성장사가 재기발랄한 문체로 펼쳐진다.
여기서 저자는 물음을 던진다. 농부의 언어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전 지구적 언어로 뻗어나갈 수 있었을까. 언어가 갖는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적 측면에서 볼 때 그 비밀은 대중의 힘에 있다. 소수 지식인의 완전무결한 언어보다 대중이 쓰는 결함투성이 언어야말로 오용되고 왜곡되고 이질적 요소도 쉽게 흡수하면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저자의 박학다식은 이름, 욕설, 발음, 철자법 등 영어의 현황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더욱 빛난다. 영어 이름을 예로 들면 성(姓)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 인두세가 어떻게 성의 사용을 촉진했는지 등에서 시작해 시시콜콜해 보이는 술집이름들의 특성까지 ‘영어 이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가장 흥미를 돋우는 부분은 욕설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fuck(성행위), piss(오줌) 등에 대해 유럽의 서로 다른 언어권과 비교하며 변천 과정을 추적한다.
책을 읽을수록 책 제목에 ‘수다’가 들어간 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와 관련된 방대한 지식이 종횡무진 부담 없이 펼쳐져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흔히 수다는 나의 참여 정도가 즐거움을 배가하듯, 독자의 영어실력만큼 이 책도 즐거움을 선사할 듯하다. 하지만 수다가 또 그러하듯 큰 맥락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산만하게 전개되는 인상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중서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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