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김수영문학관’을 어찌할꼬
올해는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확장시킨 김수영(1921∼1968) 시인 45주기이다. 때마침 서울시 도봉구(구청장 이동진)가 4층 규모의 방학3동 문화센터를 리모델링해 올 하반기 중 김수영문학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봉산과 그 인근엔 김수영의 유골이 안장돼 있고 시비(詩碑)와 본가 터까지 있으니,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은 물론 재정자립도에서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하는 도봉구가 총 사업비 13억원을 들여 문학관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인 것이다. 김수영의 여동생 수명(79)씨 역시 방학3동 주민이고 보면 장소적 측면에서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며칠 전 수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학관 운영위원에 제가 유족 추천 몫으로 민음사 장은수 대표, 문학평론가 이영준씨, 시인 최승호씨를 지명했고 도봉구 추천 3인을 합쳐 6인의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어요. 유족은 모두 빠졌는걸요.”
여기서 궁금해진다.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김수영의 미망인 김현경(86)씨의 입장이 그것.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다. “작년 12월인가. 도봉구에서 내게 사람을 보냈더군요. 문학관 건립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지만 이후 모든 의사 결정과정에서 난 철저히 보이콧 당했어요.”
그의 목소리엔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소외당한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사실 그와 시댁과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건 현경씨의 과거사에 기인하는데, 때마침 곧 출간될 김현경의 회고록 ‘김수영의 연인’ 가제본을 출판사로부터 받아 읽어보았다. 거기엔 한 시대를 풍미한 폭넓은 사교의 대상이 비교적 솔직하게 진술되어 있었다. 그는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스승인 정지용 시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1947년 시인 배인철과 사귄 것은 물론 시인 박인환과도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적었다.
1950년 4월 김수영과 결혼한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군에게 끌려간 남편 부재 시기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김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인 이종구와 살림을 차리기에 이른다. 비록 1954년 김수영에게 돌아와 마포 한강변인 서울 구수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김수영이 작고한 1968년까지 아내로 살았다고 하지만 이런 전사(前史)로 인해 김수영 가(家)에서는 여태 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엄연히 김수영의 미망인인 현경씨의 내면은 좀 더 복잡하다. “솔직히 도봉구에 문학관이 들어서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내 스케일, 내 양에 차지 않아요. 생각해보세요. 문학관이라고 하면 김수영 시인의 정신이 박힌 곳이라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지어도 시원치 않은데 도봉구라니요. 덕수궁 석조전 같은 곳이면 몰라도….”
덕수궁 석조전은 지난해 6월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 사무실에서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현경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김수영문학관 건립을 위한 간담회’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석조전을 가칭 ‘서울문학관’으로 용도변경해 이상, 박태원, 임화, 염상섭, 김수영 같은 서울 출신 문인들을 함께 기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석조전은 문화재청 관할의 등록문화재여서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좀 더 큰 스케일의 문학관을 구상하던 현경씨가 차일피일하는 동안 도봉구에서 선수를 친 격인데, 문제는 현경씨가 소장한 김수영 육필원고와 유품 등을 도봉구에 기증할 뜻이 전혀 없다고 밝힌 점이다.
여기서 따져볼 일이다. 김수영의 문학적 유산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의 사적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김수영의 문학적 유산이 사적인 시시비비로 인해 두 동강 날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문학관이 둘일 수는 없다. 현경씨의 입장이 헤아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기를 절반으로 가르라는 솔로몬의 판결에 그만 손을 놓아버린 생모의 심정으로 이 일을 다시 헤아려보길 권하고 싶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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