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1880년대 사할린, 그 곳에 조선인 노동자가 있었다

Է:2013-02-21 17:47
ϱ
ũ
[책과 길] 1880년대 사할린, 그 곳에 조선인 노동자가 있었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안톤 체호프/동북아역사재단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시점인 1890년 갑자기 유형의 땅인 사할린 여행을 결심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가설되기 전이었으며 늪지와 진흙탕 길은 물론 강과 호수를 무수히 건너야 하는, 1만㎞에 달하는 여정이었다. 체호프는 당시 폐결핵이 발병해 건강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사할린으로 가고자 했을까.

“심기일전을 위해 조국의 변방을 사모했고 봄이 왔으니 그곳에 창을 때리는 비도 내리지 않을 것”(에세이집 ‘시베리아에서’)에서 보듯 그는 작가로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활력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1890년 4월 21일 모스크바를 출발한 그가 사할린 중부에 도착한 것은 석 달이 지난 7월 11일이다. 3개월간 사할린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1만여 장에 달하는 세밀한 조사표와 귀중한 사진 자료 500점을 남겼다. 이어 탐사기인 ‘사할린 섬’을 월간지 ‘러시아 사상’에 연재한 뒤 1895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절충한 양식으로 쓴 이 문학적 천재의 기록은 곤차로프의 ‘군함 빨라다호’(1858), 가린 미하일로프스키의 ‘한국, 만주, 랴오둥 반도’(1904)와 함께 근대 러시아 작가가 쓴 극동 탐사 관련 3대 저작으로 꼽힌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이미 1880년 전후시기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할린에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다고 기록한 부분이다. 남사할린 마우카 지역을 둘러볼 때의 일이다. “세묘노프 아래에는 만자(우수리 지역과 연해주에 사는 중국인),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일하고 있었다.”(301쪽)

체호프는 이어 “다시마 채취사업이 한창이던 마우카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중국인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유형수 주민과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경제적 관점에서 유형수 주민의 섬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으니 정부가 직접 자유민의 편에 서서 유형을 금지하는 편이 더 공정하고 유익하겠다”(414쪽)는 개인적 의견까지 개진해 놓고 있다. 또한 각주에서 “(마우카의) 주인은 유대인이 3명, 러시아 군인이 7명, 그리고 한국인, 아이누인, 중국인으로 구성된 노동자가 70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학적으로 보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체호프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겠다. 또 북방 도서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의 입장에서는 리얼리티가 물씬 묻어나는 이 기록을 더욱 전략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배대화 경남대 국문과 교수의 국내 초역.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