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야기] ⑥ 올림픽과 정치

Է:2012-07-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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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정치와 전적으로 무관하다.” 이는 1956년 당시 에이버리 브런디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가 위선적이었는지, 단순히 순진했던지 이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포츠가 정치적 중립이기는커녕 스포츠는 정치로 가득 차 있다.

고대 올림픽 행사장은 더할 나위없는 정치 선전장이기도 했다. 미디어가 미성숙하던 시절 지중해 각지에서 4만명이 동시에 모이는 행사는 올림픽 외는 없었다. 정치가들은 올림픽에 모여든 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로 활용했다.

BC 324년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그리스 망명자들이 고향으로 안전하게 귀환하도록 한다는 포고령을 선언하는 장소로 올림피아를 골랐다. 제독인 테미스토클레스는 BC 480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인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후 처음 열린 올림픽 축전에 나가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BC 472년 가장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전차경기에는 도시국가 아르고스는 아예 국가 소유의 말을 출전시켜 우승하기도 했다. 올림픽 승리가 주는 찬사를 정치에 활용하려는 의미였다.

정치에 오염된 최악의 근대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 대회였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나치의 선전장이 돼버린 이 대회의 기록영화 ‘올림피아’는 뻔뻔스럽게도 독일 선수들을 ‘초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후 어느 대회도 정치적 사건을 피할 수 없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패전국들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고, 1956년 대회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 침범에 항의해 네덜란드, 스페인, 이집트 등이 불참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가 출전을 거부했고 1972년 뮌헨대회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올림픽 선수촌을 침투해 이스라엘 선수단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다 17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서방이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 불참하자, 소련권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보이콧으로 응수했다. 1980년 마가레트 대처 영국수상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영국올림픽위원회가 모스크바대회 출전을 감행한 것은 올림픽사의 한 사건으로 평가될 만하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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