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사모는 이장님… 전광준 목사와 김문희 사모의 ‘빙도일기’

Է:2011-05-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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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사모는 이장님… 전광준 목사와 김문희 사모의 ‘빙도일기’

작고 아담한 예배당. 유난히 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그때였다. 드르륵. 교회 미닫이문이 열렸다.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장님 어디 가셨소?” ‘왜 교회에 와서 이장을 찾을까.’ 미닫이문이 다시 한번 열렸을 때 궁금증이 풀렸다.

빙도(氷島). 충남 보령시 천북면 천수만 내 8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섬.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도미설화’의 배경이 된 이 섬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빙하 같다고 해 그렇게 불렸다.

섬 안 유일한 예배당, 빙도교회. 19일 찾은 이곳 예배당 안에 3대의 컴퓨터와 1대의 프린터가 켜 있었다. 누군가 만지다 간 게 분명했다. 헐레벌떡 들어온 여성은 중년 남성을 보고 밝게 인사했다. 작은 체구에 제 눈보다 훨씬 큰 안경을 코에 걸친 그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책상을 정리했다. “잠깐 와 보셔야 쓰겄어.” 남성의 말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따라 나가는 그녀. 빙도교회 사모이자 낙동4리 이장 김문희(44)씨다.

“언제 이사가냐.”

1999년 4월 19일. 전광준(49) 목사 가족이 빙도에 발을 디뎠다. 지금은 다리가 놓였지만 당시엔 일렁이는 파도를 지치며 노를 저어 들어가야 했다. 목사안수 받은 뒤 첫 임지. 아무 연고도 없는 섬. 그에게 있는 건 ‘무대뽀정신’ 하나였다.

처음 하는 섬 생활,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주민의 무관심과 무시는 일상이었다. 기를 죽이려는지 마을 아낙들은 일부러 말을 거칠게 하기도 했다. 욕을 들을 때마다 김 사모의 간은 콩알만해졌다. 두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매일 새벽 교회의 불을 밝힌 채 기도했다. “하나님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지요. 힘들지만 이곳의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언제 이사가냐.” 주민을 맞닥뜨릴 때마다 들었던 인사말이었다. 인사는 6년 동안 이어졌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 사모는 ‘3년만 참자’며 버티려 했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지요.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과 땅밖에 볼 수 있는 게 없고 경운기 소리라도 안 나면 낮에도 밤처럼 조용한 곳. 오지가 따로 없었어요.”

전 목사의 목회 의지는 강했다. 어느 순간부터 김 사모는 “다른 곳으로 가자”는 얘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2003년 어느 날. 김 사모의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환자 곁에서 누군가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김 사모 어머니 역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아버지의 옆자리를 지켜야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집에도 가지 않고 꼬박 간호를 했다. 목요일 밤, 김 사모의 언니는 부탁했다. “하루만 더 있다 가.” 전 목사는 그날따라 왠지 교회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간곡한 청을 뒤로 하기엔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일이 터졌다. 다음날 찾아간 예배당은 난장판이었다. 유리창은 다 깨진 채였다. 집기는 부서진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주민 하나가 술을 마신 채 저지른 짓.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따뜻한 위로조차 건네지 않았다. ‘이제 곧 나가겠구먼’하고 수군댔다. 부부는 그날 예배당에 쪼그려 앉아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순종하며 이곳에서 하나님 일 하겠습니다.”

‘철딱서니없는’ 이장

사건 후에도 “언제 나가?” 하는 주민들의 인사는 여전했다. 그녀는 특유의 하이톤으로 웃으며 답했다. “저 안 나가요. 어디 뼈 묻을 데 없어요?”

사람들이 인사를 받지 않아도 무작정 다가섰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같은 사람에게 하루 동안 7번이나 인사한 적도 있을 정도. 일부러 눈을 마주쳤다. 마을에 상(喪)이 났을 땐 발인 때까지 설거지하고 집안일을 봐줬다. 농사도 지을 줄 모르는 그녀, 주민들 곁에 가 서툰 솜씨로 김 매고 밭을 일궜다.

전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의 어깨를 주물렀다. 부부가 변하니 사람의 시선도 달라졌다. 하나 둘 인사를 받는 주민이 늘어났다. 김해김씨인 김 사모에겐 마을이 김해김씨 집성촌이라는 것도 다행이었다. 매일 새벽 불을 밝힌 예배당을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노인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2005년 새해가 밝았을 때,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에 이어 들린 교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장이었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면사무소까지 왔다갔다하려면 차가 필요한디 차 있는 집이 교회 에 없으니 목사 양반이 이장을 하는 게 어떻소.”

그 말을 들은 전 목사는 “나보다는 아내가 하는 게 낫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만장일치’. 이내 마을 회의가 열렸고 김 사모는 반대표 없이 이장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왜 김 사모에게 이장을 하도록 했느냐고 묻자 전 목사는 기다렸다는 듯 아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빠릿빠릿하잖아요.”

그녀가 이장이 된 뒤 마을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잘 잡히지 않았던 곳에 인터넷이 들어왔다. 인터넷 속도는 거북이 같이 느리지만 말이다. 녹색농촌체험마을에도 선정됐다. 그녀가 이장이 되기 전까지 사업은커녕 면사무소에 민원 제기하는 것조차 마을 사람들은 꺼려했다. 공무원이 일하는 걸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금씩 개선되는 마을을 보며 마을 사람들의 손도 함께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을회관에 찾아와 재잘재잘 떠들고, 연날리기를 같이 하자고 어린애처럼 조르는 김 사모를 마을 사람들은 ‘철딱서니없는 이장’이라 부른다. 물론 애정이 깃든 소리다.

어휴, 할 일도 참 많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 임무는 이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농부다. 고구마 감자 배추 무 고추를 심는 유기농 농사꾼이다.

솔로몬 왕처럼 다툼을 중재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 식구 빼고는 다 친척이에요. 땅을 놓고 싸우기도 하고, 이런저런 말다툼이 생길 때 제게 오죠. 중립을 지킨 채 화해시키려고 노력한답니다.”

빙도교회 피아노 반주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팔이 아프고 재미가 없어 피아노 치는 걸 참 싫어했어요. 근데 반주를 할 사람이 없으니 제가 쳐야죠.” 이 말을 들은 전 목사가 옆에서 활짝 웃으며 거든다. “더듬거리긴 해도 도움은 돼요. 못 치긴 해도 해주니까 힘이 나죠.”

향토예술가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버려진 나무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다. 처음엔 서각 작품이 예쁘고 버려지는 나무들이 아까워 시작했다. 버려진 나무의 밑동을 잘라 1년을 말린다. 다듬고, 켜고, 자르는 건 전 목사의 몫. 아내는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 판에 글자를 파 나간다. 철저한 분업이다.

“서각은 망치지 않아요. 덧칠을 할 수 있는 유화처럼 처음에 망쳤다 해도 회복할 수 있죠. 사람의 마음도 많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서각을 하기를 기대해요.”

어렵다, 그러나 꿈이 있다

“빚지고 살죠. 애들 공부시킬 여력도 없고요. 경제적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갈등을 많이 했죠. 어린이집에라도 나가 돈을 벌까. 그런데 그게 욕심 때문이더라고요. 지금은 기도하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걸 배우려 애씁니다.”

그래도 기쁘다. 이장이 된 지 6년여. 이제야 사람들이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는 것 같다. 교회에서 잔치를 하면 기웃거리는 사람이 늘었다.

“생활은 불편하지만 진실은 통한다는 걸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느꼈어요. 쌀이 떨어질 만하면 어떻게 아시고 주민들이 쌀을 갖다 주세요.”

부부의 꿈은 두 가지다. 이장으로서는 웃음이 넘치고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졸수(卒壽)가 넘어도 일을 할 수 있는 마을, 상큼하고 윤기 있는 노인들이 사는 마을이 되도록 하려 한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꿈이죠. ‘예수를 믿으면 저렇게 즐거운가보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나보다’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5명이 나올까 말까 한 조그만 교회. 부부는 입을 모은다. “조금 늦더라도 같이 걸어간다는 것, 참 기쁜 일이에요. 나중에 언젠가 이 마을 모든 이가 하나님에게 돌아올 날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넘어지는 사람 없이, 넘어지는 사람이 있어도 일으켜 세우며 천천히 같이 걷고 싶어요.”

보령=글 조국현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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