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도 자식이야, 우리 아들·딸처럼… 벌과 함께 41년- 박준수 장로
벌통 하나하나에 선명하게 검은색 번호가 새겨졌다. 1번과 2번 벌통은 약 5m 간격을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 두 벌통을 필두로 나란히 이어진 벌통은 서른세 쌍. 벌통과 벌통 사이로 길이 하나 만들어졌다. 벌통에 쓰인 숫자를 따라가면서 마음이 경건해졌다. 벌통 개수와 연관이 있어서일까. 벌통에 붙은 숫자는 66에서 멈췄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숫자와 일치했다.
16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나정2리. 마을 입구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5월의 푸름을 마음껏 뽐냈다. 그 밑 정자엔 동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원한 봄바람을 만끽했다. 그 옆으로 난 언덕길을 넘어가자 흰색 트럭과 파란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천막에 다다르자 먼저 일행을 맞은 건 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궁금한지, 할말이 많은 건지 얼굴 주변을 저공비행했다. 손으로 쫓으면 어느새 다시 다가와 머리 위를 돌고 또 돌았다. 천막 문을 열자 조그만 공간에 겹겹이 쌓아놓은 이불과 누렇게 때가 낀 베개, 놋그릇이 나뒹굴었다. 구석 가스레인지의 호스는 천막 바깥 LPG가스통과 위태롭게 연결돼 있었다.
기도하는 삶 그리고 주름
중무장. 그 단어가 딱이다. “계십니까.” 큰 소리로 외치자 저쪽(1번 벌통)에서 벌통을 들여다보던 박준수(71·전남 나주 광암교회) 장로가 손을 흔든다. 멀리서 보니 펜싱 선수 모습과 비슷했다. 머리에는 촘촘한 망이 씌워졌고, 긴 티셔츠와 긴 바지가 벌침으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다리엔 장화로 ‘철통 벌침 경계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했다.
“얘들이 매일 보는데도 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싸매도 어떻게 알고 들어와서 침을 놓고 간다고.”
그의 너털웃음은 정겨웠다. 손자를 앞에 둔 듯 기분 좋은 홍연대소(哄然大笑). 웃을 때마다 그의 얼굴에 깊숙이 팬 주름은 아름다웠다.
박 장로는 주름 속 숨겨놨던 그의 얘기를 하나씩 꺼내 보였다.
41년째다. 벌을 키운 지…. 여름철 뙤약볕도, 혹한기 추위도 박 장로의 벌 사랑을 막지 못했다. 손을 만져봤다. 울퉁불퉁, 까끌까끌. 거칠었다. 벌에 쏘인 자국도 곳곳에 널렸다. 하지만 자기 손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했다. 거칠어진 손을 보면 ‘내가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았구나’ 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박 장로의 아내 김광량(71) 권사의 손도 매한가지. 1964년 박 장로와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 양봉을 해오면서 그녀의 손은 하루하루 남편의 그것을 닮아갔다. 둘이 닮은 건 손뿐만이 아니다. 얼굴색, 주름도 똑 닮았다.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다잖아요. 근데 우리 부부는 순전히 땡볕에서 벌 키워서 주름지고 얼굴 탄 거여.”
둘은 가끔 서로 바라보며 주름을 센다고 했다. 서른 둘, 서른 셋…. 지난번보다 주름 수가 늘어난 걸 알면 서로를 바라보고 껄껄 웃는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이 기도하는 삶 속에 주름 개수가 하나하나 늘어가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더구먼요.” 박 장로는 또 한번 너스레를 떨었다.
꿀벌이 사라진다
부부의 얼굴 속 멋진 액세서리가 돼 버린 주름. 하지만 마냥 웃어서 생긴 건 아니다. 선선한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주름 진 손으로 정리하며 박 장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참 힘들어요. 벌을 키우고 꿀을 만든다는 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벌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작은 눈에 이슬이 맺혔다.
예전엔 참 좋았다. 벌도 많았고, 꿀도 많이 얻어냈다. 매해 드럼통으로 20∼30통은 기본. 꿀의 질도 최상에 가까웠다. 돈을 많이 번 건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기뻤다.
“마태복음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잖아요. 열심히 일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쉬고, 다음날의 일을 기도하며 준비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박 장로, 근심이 많다. 지난해 1년 내내 모은 꿀의 양은 드럼통 다섯 통(이 말을 할 때 왠지 주름이 더 깊게 패어 보였다). 보통 5월 초에 전남 나주 집에서 나와 11월 초까지 전국을 돌며 벌을 얻는다. 고령은 첫 번째 경유지. 앞으로 경북 의성, 봉화를 거쳐 전북 무주, 순창까지 여정이 이어지지만 걱정이 앞선다.
가장 큰 문제는 벌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딱 보면 알지. 잘될 땐 벌통 주변이 벌들로 새카맸으니까. 근데 지금 봐요. 평소의 절반 정도도 안 돼.”
그래서 그런가. 벌의 움직임에서 힘을 느끼기 힘들었다. 원인을 모른다. 누구는 ‘벌 감기’, 누구는 ‘벌 에이즈’ 때문이란다. 그 사이 벌의 의문사만 반복되고 있다.
최근 스위스의 생물학자 다니엘 파브르는 벌의 잇단 떼죽음의 원인으로 휴대전화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동통신기기에서 나오는 전자기파가 꿀벌의 행동 이상을 이끌어 정상적 군집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박 장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있을까 귀를 곤두세운다.
“벌이 없어지니 꽃 안에 있는 그 좋은 꿀을 옮기지 못하죠. 자연스럽게 꿀 양도 줄어드는 거고. 힘들게 일해 봐야 노력의 결과가 없어지는 게 가장 안타깝고 힘든 일이에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벌이 없어지면 생태계에 교란이 생긴다. 수정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벌이 없으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섭취해야 할 과실 상당수가 없어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정부는 벌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박 장로가 걱정하고 근심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수밖에 없다.
“으이그 좋단다. 하하하”
박 장로 부부는 인터뷰 도중 “벌통을 가만 놔두면 안 된다”며 번갈아 자리를 떴다. 일을 하는 부부,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물어봤다. 뭐라고 한 거냐고.
“지금 수없이 벌이 많지만 다 내 아들 같고, 딸 같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식 같은 벌들 아프지 않게,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거지. 얘들이 있어야 십일조도 내잖아요. 주기도문도 외우고, 암송한 성경말씀도 읽어주고 자식 놈 셋 키울 때랑 똑같이 해.”
박 장로는 자신의 일흔 인생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벌 그리고 신앙. 그의 삶의 근원이다.
어린 시절 실수로 교회에 불을 낸 그는 미안한 마음에 꽤 오랜 기간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70년 처음 양봉을 시작하면서 전국을 돌 때부터 우연히 한두 곳씩 교회를 들락거렸다(양봉은 한 곳에서 하지 못하고 계속 좋은 꽃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33세가 되던 해, 경기도 양평 조그만 교회를 찾았다 하나님을 만났다.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평안해지고 자유로워졌어요. 가진 것도 없는데 온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더군요.”
그때부터 성경을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밤을 꼬박 새우기도 부지기수. 자신 같은 죄인을 사랑하고 용서해준 하나님이 너무나 좋았다. 전남 나주에 본가가 있지만 일 때문에 1t 트럭, 천막에 의지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부부는 주일이면 무조건 인근 교회에 가 경건히 예배를 드린다.
“건전한 교회생활, 신앙생활이야말로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죠. 저는 믿는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힘들지만 괴로워하지 않죠.”
그는 벌을 키우면서 수시로 기도하지 않으면 ‘볼일 보러 갔다가 닦지 않고 나온 것처럼’ 찝찝하다했다.
“하나님 안 만났으면 돈 없다고, 뭐 없다고 항상 불평, 불만만 하고 살았을 거야. 그치? 우리는 행복한 부부여.”(박 장로)
“으이그, 좋단다. 하하하.” (김 권사)
손을 꼭 잡은 채 벌을 보러 벌통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동갑내기 부부의 뒷모습이 취재 도중 한입 맛본 벌꿀처럼 달콤해 보였다.
고령=글 조국현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jo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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