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한 산길따라 흐뭇한 사과꽃 향기…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2리
통일신라의 명필 김생과 학자 최치원이 수학했던 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지냈던 곳, 그리고 퇴계 이황 등 수많은 선비들이 100여편의 유람록과 1000여수의 시로 극찬한 경북 봉화의 청량산(870m)은 금강산에 비견되는 명산이다.
소수서원의 전신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은 1544년 청량산 최초의 기행문인 ‘유청량산록’에서 “단정하고 엄숙하며 상쾌하고 경개한 산으로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산이 청량산이다”고 기록했다. 이어 “내 집에 김생의 서첩이 있다. 그 글자의 획이 모두 뾰족하고 굳세어 바라보면 마치 여러 바위가 빼어남을 다투는 듯하였다. 지금 이 산을 바라보니 바로 김생이 여기에서 글씨를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고 감탄했다.
그 청량산이 김생의 글씨처럼 획이 뾰족한 뫼 산(山)자로 보이는 곳이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청량산 맞은편에 위치한 만리산(792m) 자락의 명호면 관창2리가 바로 그곳이다. 관창(觀漲)이라는 지명은 마을 뒤 바위에서 낙동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를 내려다본다는 만리산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보다 오래된 분화구인 ‘늘못’을 품고 있는 산으로 화전민의 흔적이 곳곳에 애처롭게 남아있다.
대로방 등 5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관창2리는 이나리강을 가로지르는 오마교 건너 산기슭에 꼭꼭 숨어있다. 이나리강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원류가 명호에서 운곡천을 만나 청량산 앞까지 흐르는 낙동강의 별칭으로 래프팅의 명소다. 잠수교인 오마교(五馬橋)는 공민왕 피난시절에 말 다섯 필이 나란히 달리며 훈련을 하던 청량산의 축령봉 오마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나리강과 나란히 달리던 시멘트길은 촘촘한 등고선을 그리며 이내 대로방이라는 마을로 들어선다. 대로방은 낙동강과 가장 가까운 마을로 사과밭에 둘러싸인 오두막의 굴뚝에서는 요즘도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보는 청량산 바위봉우리들은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았다.
오솔길이던 마을 진입로가 자동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포장된 것은 15년여 전.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낭만적 이름의 도로 곳곳에는 시처럼 아름다운 글이 새겨진 나무판자가 꽂혀있다. 사람 그림자조차 반가운 심심산골에 누가 저 글들을 써놓았을까? 길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다른 얼굴을 한 청량산이 나무판자와 어우러져 열두 폭 병풍그림을 연출한다.
길은 무들피 사과밭에서 세 갈래로 나눠진다. 가운데 길은 넓은 들이라는 뜻의 늘방으로 통한다. 송신탑이 우뚝 솟은 늘방에 오르면 청량산을 비롯해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왼쪽 길은 물이 많아 무들피로 불리는 마을의 진입로로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마을은 아직도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오지 중의 오지.
마침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해 무들피 노인이 황소의 고삐를 잡고 앞장선다. 품앗이에 나선 이웃 노인이 황소가 끄는 쟁기로 느릿느릿 밭을 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분홍색 옷을 입은 강아지 한 마리가 황소에게 빨리 걸으라고 채근한다. 걸개그림처럼 걸린 청량산이 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워낭의 소리’ 고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관창2리의 중심마을인 남애는 오른쪽 길을 택해야 만날 수 있다. 남애는 하남애, 중남애, 상남애로 이루어진 산골로 산 정상에 위치한 상남애에는 거대한 사과밭이 조성되어 있다. 안개와 이슬을 먹고 자란 상남애의 사과꽃은 향기조차 그윽하다. 사과나무 아래에는 민들레꽃을 비롯해 하얀 냉이꽃과 노란 꽃다지가 지천으로 피어 천상의 꽃밭을 연출한다.
관창2리에서도 외딴마을인 황애는 상남애에서 북쪽으로 뻗은 조붓한 숲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산의 9부 능선을 달리는 길의 오른쪽은 바라만 보아도 아찔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귀향농인 황애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도라지를 심고 고추밭을 일궜다. 길은 삼각형 지붕이 멋스런 이층집과 화전민이 살던 슬레이트 폐가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황애마을에서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청량산은 황애마을에서 볼 때 가장 장엄하다.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주변의 봉우리가 뫼 산(山)자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낙동강 상류의 굽이치는 물결과 퇴계 선생이 만년에 사색을 하며 즐겨 거닐었다는 ‘예던길’도 이곳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공공사가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한 포인트는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팻말을 단 이층집의 장독대 앞. 이곳에 서면 비온 다음날 안개와 숨바꼭질하는 청량산 봉우리들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황애마을에는 숨겨진 옛길이 하나 있다. 찻길이 생기기 전 관창2리 주민들이 명호오일장을 오가던 500∼600m 길이의 오솔길로 이층집 주인이자 나무판자를 세운 주인공인 김두한씨가 삽과 곡괭이로 계단을 만들고 끊어진 길을 이었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오솔길을 내려가자 관창폭포 가는 외길이 그 옛날 퇴계를 맞듯 나그네를 반긴다.
안동에서 봉화까지 낙동강을 따라 유람하던 퇴계는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관창폭포를 보고 “높은 벼랑에 절벽이 뚫린 지 몇 해/성난 물줄기 천길 쏟아져 흰 비단 드리웠네/우렁찬 소리 바위 숲 흔들어 귀신도 도망가고/한 구역 영물이 모든 신령한 산일세”라고 읊었다.
만리산 자락에는 재미있는 전설 하나도 전해온다. 원나라 황족인 위왕의 딸로 고려의 공민왕과 결혼한 노국공주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과 함께 청량산으로 피신했다 만리산 자락을 찾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당시 노국공주가 앉아 청량산을 감상하던 자리를 왕위(王位)라고 부르는데 어느 곳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량산과 낙동강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는 곳, 황애마을의 외딴집 장독대 주변 풀밭에 앉으면 그곳이 곧 왕위가 아닐까.
봉화=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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