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세동마을 주민들 김은규 장로에 감사… “깡촌에 富·믿음을” 53년전 전도사에 공적비
1959년 어느 날, 27세의 김은규(사진) 전도사가 대전 유성구 세동의 시골 마을을 찾았다. 희멀건 얼굴에 말쑥한 차림의 이 젊은 사역자는 흙벽돌로 아담한 교회를 지었다. 지금도 세동을 지키고 있는 세동교회다. 그는 이후 가난한 농민들을 사랑하며 진실된 목양을 펼쳤다. 목자의 심정으로 세동 사람들 깊숙이 들어갔다. 주민들은 신자, 비신자 가릴 것 없이 세동교회를 ‘우리 교회’라고 불렀다.
김 전도사는 10년 동안 세동교회에서 사역한 뒤에 경북 예천의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그 사이 세동교회는 안정됐고 마을 살림은 윤택해졌다. 마을 주민들에게 교회는 축복의 상징이었다. 김 전도사는 예천에서 몇 년간 사역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평신도로서 삶을 살았다.
그가 세동을 떠난 지 43년이 지났지만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젊은 김 전도사’를 그리워했다. 마을에는 그가 수십 년 전에 뿌린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 전도사와 청년기를 함께했던 마을 주민 전영림(65)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신학대학을 나와 공부만 하던 총각이 ‘깡촌’에 와서 촌부들과 부대끼며 복음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가난한 마을을 먹고 살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진짜 목사’였어요.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지요. 모두가 그것을 압니다.”
김 전도사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향상을 위해 먼저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조각난 비닐을 모아 볏짚으로 엮어 엉성한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농민들은 그곳에서 상추를 심어 가외 수입을 올렸다.
농민 의식 개혁에도 힘썼다.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며 마을 주민과 함께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 청년들과는 농촌 청년 모임을 결성, 농촌 활성화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당시 20∼30대였던 청년들은 이제 60∼70세의 노인이 됐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마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김 전도사에게 감사를 전하기로 결정했다. 보름 만에 60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대부분의 세동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했다.
주민들은 최근 마을 집하장 앞에 김 전도사의 공적을 기록한 기념비를 세웠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 한국을 찾은 차남 김신호(샌프란시스코 시청 근무)씨는 지난 3일 열린 공적비 제막식에서 “아버지를 잊지 않은 주민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올해 79세인 김 전도사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은퇴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김 장로는 행사 도중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미천한 나를 기억해 주다니…”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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