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고등어 눈

Է:2011-05-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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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찬희] 고등어 눈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남쪽 바닷가에서 고등어는 흔한 생선이 된다. 조리고, 굽고, 소금 간을 해 먹는다. 고등어는 서민들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단골 메뉴다. 한때 부산 남포동이나 서면 골목길은 고소한 ‘고갈비’ 냄새로 가득했다. 비싼 소갈비는 아니지만 석쇠에 올리면 ‘치익∼치익∼’ 소리를 내며 익는 고갈비는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게 훌륭한 한 끼였다. 빠듯한 살림에 근심 어린 얼굴로 장보러 갔던 어머니는 고등어 한 손 사들고 오시며 환하게 웃으시기도 했다.

고등어는 ‘바다에서 나는 보리’라고도 한다. 그래서 ‘밥상 물가’를 알아볼 수 있는 잣대 가운데 하나다. 평범한 가정에서 고등어 한 마리 사기가 망설여진다면 물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고등어값이 만만찮게 올랐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고등어 중품(中品) 1마리 소매가격은 전국 평균으로 4100원이다. 평년 가격(2841원)과 비교하면 30.7%, 1년 전(3372원)보다는 17.8% 올랐다. 고등어구이를 파는 식당에서는 7000원 이상을 줘야 맛볼 수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로 어획량이 줄었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각종 비용 지출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료나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를 밀어 올리는 일종의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인 셈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 상승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에는 경기가 과열되면서 소비·투자 등 수요가 크게 늘어나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수요 측면도 있다.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과도하게 풀어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기대심리다. 물가가 계속 오른다는 심리가 만연해지면 돈 가치는 바닥에 떨어진다. 불안감은 더 큰 불안을 부르고, 악몽을 현실로 만든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막대한 배상금 지불, 경기 침체, 살인적 물가에 시달렸다. 1922년 하반기에 생활비 지수가 16배 올랐다. 이듬해 11월 화폐 개혁을 할 때까지 물가는 100억 배가 뛰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나치정권 탄생과 2차 세계대전의 밑거름이 됐다.

선진국들은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은 뒤 인플레이션 차단을 위해 중앙은행을 정부에서 독립시켜 ‘물가와의 전쟁’ 최전선에 배치했다. 우리도 87년부터 97년까지 격렬한 논쟁을 거친 끝에 한국은행에 ‘독립’을 안겼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은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라는 최대 목적에서 비켜서 있다. 물론 한은이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2%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7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1월과 3월에 0.25% 포인트씩 올렸다.

그럼에도 물가는 고공비행 중이다. 넉 달째 4%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간 물가 상승률이 4%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나온다. 왜 그럴까. 시장에서는 한은의 의지를 의심한다. 미리 물가 상승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정부의 경제성장 우선정책에 밀려 뒷북만 친다고 꼬집는다. 한은이 통화가치의 안정을 고민하는지 묻기도 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발터 오이켄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통화 안정성의 훼손이라고 했다. 돈 가치가 급락하면 국가경제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항상 정부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가져야 하고, 통화가치 안정(다른 말로는 물가 안정)에 힘써야 한다.

밥상 물가를 대변하는 고등어는 여느 물고기처럼 눈꺼풀이 없다. 바다를 헤엄쳐 다닐 때도, 식탁에 오를 때도 눈을 뜨고 있다. ‘루시드 폴’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고등어’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감는 법을 모르는 고등어 눈처럼 한은도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서민들 밥상을 지켜줬으면 한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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