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옆 흐드러진 배꽃 정겨운 풍경에 콧날 시큰… ‘동심의 작가’ 장욱진 화백 고향 연기군
소, 강아지, 까치, 나무, 구름, 해, 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초가집…. 고 장욱진(1918∼90)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친숙한 소재들이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한 장욱진 화백의 작품들은 대부분 정겨운 시골 풍경을 담고 있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고 한국전쟁 때 잠시 피란생활을 했던 충남 연기군 동면 송룡리이다.
장욱진 화백의 생가는 경부선 철로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철마의 거친 호흡에 놀란 배꽃과 복사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까치는 작품 ‘연동풍경’에서처럼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현재 친척이 살고 있는 생가는 140여년 전에 건립된 한옥.
안채 옆에는 당시의 우물도 보존되어 있다.
피란시절에 그려진 작품들의 무대를 한눈에 보려면 마을 뒷동산에 올라야 한다. 나지막한 지붕이 하늘과 맞닿은 오르막 끝은 나분마루공원으로 불리는 야트막한 야산. 이곳에 서면 해송 숲 아래로 장욱진 화백의 생가가 보이고 철로 너머로 미호천이 흐르는 동진들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지금은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야산의 황톳길은 장 화백의 자녀들이 연동초등학교에 다니던 길로 훗날 ‘황톳길’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장욱진 화백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다 초가을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연동풍경’ ‘나룻배’ 등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40여점의 작품은 이때 그려졌다. 대표작은 ‘길 위의 자화상’으로 19세기 영국풍의 모닝코트를 걸치고 중절모와 박쥐우산을 든 채 수염과 가르마로 한껏 멋을 낸 장 화백이 황금들판 사이로 난 황톳길을 홀로 걷고 있다. 하늘엔 조각구름이 떠있고 들판에는 까치 몇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가 그를 따른다. 작품 속의 그 황금들판이 나분마루공원에서 바라보이는 동진들이다.
일흔 셋의 나이로 타계한 장 화백은 한 줌 재가 되어 생가와 가까운 선영의 탑비에 모셔진다. ‘느리울’로 불리는 응암2리 마을의 선영에는 기단 위에 4가지 색깔의 장방형 돌을 쌓아 만든 탑비가 홀로 외롭다. 탑비 상단에는 심플한 그림을 찾아 나섰던 장 화백을 기리기 위해 마지막 작품이 새겨져 있다. 생가와 마찬가지로 탑비 주변에도 양지꽃과 제비꽃 등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가는 봄날을 그리워한다.
충북 음성의 망이산성에서 발원한 미호천은 금강과 합류하기 직전 150만평에 이르는 동진들의 젖줄 역할을 한다. 예전에 동면에서 군 소재지인 조치원에 가려면 들녘을 가로질러 나룻배를 타든지 아니면 경부선 철교를 걸어 미호천을 건너야 했다. 지금 동진나루터는 사라졌지만 1951년에 발표한 ‘나룻배’에는 당시의 정감어린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동면 합강리에서 공주시 경계까지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지. 연기의 남쪽을 흐르는 금강은 비록 구간은 짧지만 금강팔정 중 합강정과 독락정 등 2개의 정자가 있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곳. 합강정에 오르면 군산 앞바다에서 소금과 어물을 실은 황포돛배가 금강을 거슬러 오르던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내년 7월 1일 세종시로 승격하는 연기군은 경부선 철도와 1번 국도가 달리는 등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다.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마지막 항전을 했던 운주산성도 1번 국도를 지척에 두고 있다. 1번 국도에서 운주산성 주차장을 거쳐 서문까지는 임도를 따라 약 3㎞.
운주산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는 산벚나무와 철쭉이 지천이다. 백제부흥군의 최후를 상징하듯 산벚나무 꽃잎이 떨어지자 핏빛보다 붉은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길이가 3098m나 되는 운주산성의 주문은 서문. 분지 형태의 성안은 우물과 건물터, 토기 조각 등 백제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돼 백제부흥군의 근거지이자 최후의 항전지였던 주류성으로 추측된다.
서문에서 운주산 정상까지는 약 20분 거리. 항상 운무가 자욱해서 운주산(406m)으로 불렸다는 정상에는 ‘백제의 얼 상징탑’이 우뚝 솟아있다. 정상에서는 남쪽의 계룡산을 비롯해 서쪽의 차령산맥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 옹기종기 들어선 마을은 멀리서 봐도 하얀 배꽃과 연분홍 복사꽃이 만발해 꽃피는 고향산골을 연출한다.
운주산성과 가까운 전의면 관정리에는 ‘왕의 물’로 유명한 전의초수가 있다. 연기군과 천안시의 경계에 위치한 전의초수는 후추처럼 똑 쏘는 맛을 내는 약수.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이 물을 1년 동안 마시고 눈병을 고쳤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질 무렵 전의초수를 떠서 다음날 동이 트기 전에 250리나 떨어진 궁궐에 도착하도록 건장한 사람을 뽑아 말을 달리게 했다는 것. 우물은 철책에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지만 허름한 상점에는 관정을 통해 뽑아 올린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다.
연기의 봄은 1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운주산성과 마주한 베어트리파크에서 절정을 맞는다. 베어트리파크는 이재연(81) 대표가 재계에 몸담았던 젊은 시절부터 보살피고 가꿔온 수목원. 취미로 하나하나 소중하게 키워온 수백그루의 향나무와 주목은 이제 늠름한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했다.
반세기 가깝게 가꿔온 ‘비밀의 정원’이 일반에 개방된 것은 2009년 5월. 10만여평의 숲에 150여 마리의 반달곰과 꽃사슴이 뛰어노는 베어트리파크는 연산홍을 비롯한 온갖 화초가 꽃망울을 터뜨려 장욱진 화백의 그림처럼 동심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연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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