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안식의 날(土)]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다

Է:2011-04-22 17:53
ϱ
ũ
[고난주간 묵상-안식의 날(土)]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다

유대인의 안식일에 주님은 무덤에 머무셨다. 십자가와 부활의 분기점에 무덤이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패역한 인간의 손에 맡겨두신 그 한계점에 무덤이 있었다.

악랄한 인간의 수작은 극에 달했다. 하나님 아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손바닥으로 뺨을 쳤다. 살이 찢어져 선혈이 낭자하도록 채찍질했다.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며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조롱했다. 최악의 모욕, 저주의 비아 돌로로사, 치욕의 십자가, 손과 발의 대못, 옆구리를 찌른 군인의 창, 마침내 운명, 차디찬 무덤의 바닥, 칠흑 같은 어둠…. 거기까지였다. 죄인들의 손에 그 아들을 맡겨 두신 낮고 천한 자리, 무덤까지였다.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자신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스올에 있었던 것 같이 자신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고 하셨다(마 12:38∼40, 욘 2:1∼6). 이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비하)이라고 설명했다. 주께서 낮아지심으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증거했다(빌 2:6∼11). 그렇다. 죽음 없이 어떻게 생명이 있으며, 무덤 없이 어떻게 부활이 있으랴.

한 사람 아담을 통해 들어온 온 인류의 죽음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생명이 들어왔다. 그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무덤에 갇히기까지 인간의 손에 두셨다. 거기까지였다. 무덤까지. 인간이 수작을 부릴 수 있는 한계점이 거기까지이다. 어찌 인간이 죽음 너머를 간섭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세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다만 불안한 밤을 지새울 뿐이다. 육중한 바위로 무덤 문을 막고 인봉하며, 파수꾼을 늘려 철통같이 경계할 뿐이다. 여전히 불안한 밤은 깊어갔다.

그 밤, 하나님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치밀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이시다. 그 주권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것은 부질없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는 겸허하게 엎드려 새 역사의 새 아침을, 영원한 새 생명의 새 아침을 열어 주실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자.

QT 적용 :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났는가. 오늘 나의 삶은 누구의 삶인가(마 27:57∼66, 막 15:42∼47, 눅 23:50∼56, 요 19:38∼42).

박종구 목사<크로스웨이성경연구원>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Ŀ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