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한옥 예배당서 한세기 ‘믿음의 역사’ 쓰다
(7) 강화도 성공회 온수리교회
강화도는 우리 근현대사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고장이다. 온수리교회는 한국성공회의 성지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쉬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역사교회다. 이 교회는 처음부터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 선교활동을 폈다. 생명을 구하고 인재를 키우며 1세기가 넘도록 한옥식 예배당을 고스란히 지켜가고 있다. 2003년에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52호로 지정됐다. 이곳 사람들은 교회를 온수리성공회라고 부른다. 2004년 한옥 예배당 옆에 현대식 건물의 새 예배당을 완공했다. 김갑수(요나) 교우가 기증한 부동산이 동력이 됐다. 150여명의 교인들에게 장례식장을 개방하고 주민들에게 결혼식 피로연이나 지역의 행사 때마다 식당을 개방한다. 문화재 예배당으로 일반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외규장각 145년 만에 돌아오던 날 강화도로
잊고 있었다. 145년 전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긴 곳이 강화도라는 사실, 그리고 강화시외버스터미널. 지난 14일 낮 강화도로 가기 위해 서울 신촌 강화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도심 속 시골의 터미널’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었다.
“그랜드마트 건너 현대백화점에서 동교동으로 올라가다 보면 강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거예요. 벌써 1년이 넘었을 텐데 아직도 몰랐을까.”
50대의 포장마차 여 주인은 옛 시절이 그리운지 한숨을 쉬면서도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줬다. 신촌 현대백화점 정문에서 동교동 삼거리 방향으로 200∼300m 가니 터미널은 없고 강화행 버스 안내판이 나왔다. 버스는 신촌 기차역을 돌아 아트레온(구 신영극장) 앞에서 돌아간다.
한국성공회 온수리교회는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의 3 번지에 있다. 대명포구와 초지대교를 건너 온수리시장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건너편 길상농약사 간판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온수리교회는 정족산(鼎足山)의 봉우리들이 교회 지붕위로 병풍처럼 빗대어 보여 산수화같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남쪽으론 초지들판과 바다로 흐르는 물줄기와 서해바다가 보인다.
온수리교회는 1898년, 현재 난저울이라고 불리는 난저골진료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1903년 한 해 동안 난저골 진료소에서 3541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생명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 사업은 자연스럽게 선교로 이어졌다. 1901년 힐라리에게 영세를 받은 불은면 출신 구건조 교우가 첫 씨앗을 뿌렸다. 온수리 지역의 유력한 양반 집안인 광산 김씨 문중을 전도한 것이 온수리교회의 모태가 됐다.
김여수 교우 해방도 못보고 감옥에서 순교
기존의 예배당이 좁아 1906년에 새로 건립된 교회에 들어가려면 우선 ‘솟을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지붕은 우진각으로 조선시대 성곽의 망루 같다. 지붕 아래에 종을 매달아 사방으로 종소리가 퍼져 나가도록 꾸몄다. 그러나 당시의 종은 일제시대 때 징발당해 사라졌고 지금의 종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단 것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팔작지붕 홑처마를 간직한 전통 한옥 예배당이 반긴다. 정면이 3칸, 측면이 9칸, 합이 27칸인 일자형 전통한옥이다. 지붕 용마루 양쪽 처마의 십자가 장식과 지붕 끝 합각 벽면에 벽돌로 새긴 십자가 장식을 빼놓으면 영락없는 조선시대 향교다.
그러나 예배당 문을 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로마시대 법정과 궁정 등에서 사용된 평면 직사각형 건축양식으로 성당 건축의 기본형을 충실히 따랐다. 12사도들을 상징하는 12개 기둥과 회중석이 구분되어 있다.
온수리교회는 강화도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병으로 인해 조선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질 때에 조선 의병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전달하는 신호기로 교회 깃발을 사용하기도 했다. 강화도의 3·1운동은 4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1개월간 계속됐으며, 19일 오후엔 온수리교회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수백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여수(마태) 교우는 계속된 항일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다 조국 해방을 몇 개월 앞두고 감옥에서 순교했다. 온수리교회는 2000년 8월 15일 김 교우의 애국심과 신앙심을 기리기 위해 교회 오른쪽 정원에 독립운동순국비를 설립하고 매년 3·1절 직전 주일 미사 후에 추모식을 개최한다.
사회사업은 113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1981년 개원한 ‘성 안나의 집’이 대표적이다. 이순덕(안나) 교우가 재산을 성가수녀회에 기증하여 설립됐다. 이곳엔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수녀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정신지체인들을 위한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이다. 이 마을은 김성수 전 성공회대 총장이 퇴임 후 기증한 부동산으로 설립됐다. 여기엔 50여명이 수경재배, 상추, 무농약 콩나물, 느타리버섯 등을 생산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온수리교회를 오가며 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강화=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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