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아니라면 미안하다?

Է:2011-04-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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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태원준] 아니라면 미안하다?

“스코틀랜드 네스호에는 괴물 네시가 산다. 히말라야에는 예티가, 북아메리카에는 빅풋이, 아마존에는 마핀과리가 산다. 그리고 한국에는 박상이 산다.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가 박민규가 이렇게 평가한 박상은 기타 치며 야구하는 소설가다. 문인 야구단 ‘구인회’ 단장이자 록밴드 ‘말도 안돼’의 기타리스트인 그는 최근 ‘15번 진짜 안 와’란 장편소설을 펴냈다. 여기서 ‘15번’은 버스다. ‘기다림’에 관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을 내면서 곡을 하나 만들었다. 곡명: 15번 진짜 안 와, 작사·작곡: 박상, 가사: “아무리∼ 기다리고 있어도∼ 15번∼ 진짜 안 와∼”.

그의 밴드 이름 ‘말도 안돼’를 연상시키는 그의 소설이 있다. 제목 ‘말이 되냐’. 사회인야구단에서도 형편없는 실력에 만년 후보였던 주인공 이원식씨가 야구 고수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소설의 소제목들은 이렇다. ‘그냥 직장인이라니 말이 되냐’ ‘때릴 수 없는 공이 말이 되냐’ ‘아무도 못 치는 게 말이 되냐’ ‘프로야구라니 말이 되냐’… ‘작가 후기라니 말이 되냐’.

이쯤 되면 짐작하시겠지만, 그의 소설은 개그에 가깝다. 첫 소설집 ‘이원식씨의 타격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타격폼이란 방망이로 무언가를 때리려고 할 때의 모든 행동을 말한다. 야구공이든 밥이든 낮잠이든 하여간 때리려는 건 다 타격폼이다.(중략) 그러나 다 필요 없고, 내가 생각하는 타격폼이란 세상을 웃기려는 몸부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소설가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창작이고 소설이니까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타격폼=웃기려는 몸부림’이라 강조해도 ‘타격폼’을 묻는 시험문제에 ‘웃기려는 몸부림’이라고 적을 학생은 없다. 더구나 그는 예의 바르게 ‘아니라면 미안하다’고 미리 사과까지 했다.

그의 소설에 빗대서 이 얘기를 하는 게 조금 억지스럽다는 거, 안다. 많이 생각해봤지만 더 고상한 비유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난데없이 끌려 들어온 박상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기분 나쁘다면 미안하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갖고 있는 도덕 교과서 114쪽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 한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아리랑’이란 내용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한글을 가장 우수한 글자로 뽑았고, 서양 작곡가들이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로 선정했다는 것이다.(본보 3월 25·26일자 1면)

이게 ‘말이 되냐’? 어떤 선율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문화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텐데. 그래서 유럽 귀족은 모차르트에 열광했고, 미국 흑인들은 재즈를 연주했고, 우리는 판소리 가락에 어깨춤을 추는 것 아닌가? 인류가 만들어낸 그 많은 선율 중 가장 아름다운 1위를 뽑는 게 과연 가능한가? 그런 대회가 정말 있었을까?

이런 질문 없이 ‘세계 1위’라니까 덥석 교과서에 실었다. 아리랑과 한글이 세계 1위인 근거라며 교과서가 제시한 ‘팩트’들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로 드러났다. 아이들에게 우리 것이 좋다는 걸 알려주려 했다는데, 이건 아이들이 문화적 상대성을 인식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기를 생각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짓이다. 그러면서 다문화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이 교과서 집필진은 인터넷 유언비어를 충분한 확인 없이 베껴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사실이 아니라면 교과서 수정 자료를 배포하겠다고 한다. 교과서가 박상의 소설인가? 2009년에만 초등 국정교과서에서 1155건, 중·고교 검인정교과서에서 6528건 오류가 발견돼 출판 후 수정됐다. 일본이 불순한 의도로 역사 교과서를 왜곡했다며 흥분하는 동안 한국 교과서는 빈곤한 철학과 불성실한 검증에 왜곡되고 있다. 언제까지 ‘아니라면 미안하다’만 할 텐가.

태원준 특집기획부 차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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