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92)

Է:2011-03-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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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다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활주로를 쏜살같이 내달리던 비행기가 허공으로 붕 떠올라 구심(求心)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면 온갖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그것은 실로 보잘 것 없는 것에서 갑자기 우러러 보는 현존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곧 원근법의 이치를 좇아 구름 밑으로 펼쳐지는 지상을 보며 ‘내가 왜 저기서 아등바등 살았었지?’하고 묻게 됩니다. 다시는 그리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말이죠. 구름 위에서는 참으로 보잘 것 없음과, 기쁨과 슬픔, 분노와 허탈을 한꺼번에 던져버리는 탈속의 상태가 일어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말입니다.

2월 18일 오전 9시30분 카트만두행 비행기에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의 일행도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여러 무리 중에 그를 발견하곤 갑자기 관념이 직립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저 어디론가 가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공통으로 품음직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여행의 동기’가 상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나는 히말라야를 가는 거다. 히말라야에는 뭐가 있는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있는 이곳에는 없는 것이 그곳에 가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와 맞는,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동안 찾고 찾던 그 무엇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다면 여행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행이란 새로운 국적을 얻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박범신 선생이란 존재가 내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한낮이 조금 지난 오후에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내렸습니다. ‘국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은 소박하고 남루한 청사를 나와 준비된 버스를 탑니다. 형형색색으로 단장한 버스의 지붕 위에는 커다란 짐들을 싣고, 단출하기 그지없는 자동차 안으로 사람들이 또 짐처럼 실렸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납니다. 일제히 일행은 각자의 시야에 비치는 풍경을 훑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風景’입니다. 풍경은 때때로 숭고함을 갖기도 하지만 낙망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연이 종교와 시를 잉태한다면, 도시는 경멸과 구토를 배설하기도 하니까요. 카트만두라는 도시의 풍경은 숭고와 경외가 아니라 배설과 구토 위에 돋아난 버섯과 같았습니다. 사람과 짐승과 온갖 쓰레기들은 도시를 이루는 종균(種菌)과도 같았습니다. 종균의 배양토와도 같은 도시를 자동차는 좀체 헤치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마치 미드콘드리아나이트로백터테트라이지인플루엔스박테리아(미드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숨을 헐떡이는 해면체를 밟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생각의 산파와 동행하는 여행’이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비상의 쾌감을 조롱하는 여행’이며,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종균과도 같은 도시에 붙들려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행은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를 붙잡아 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여행의 ‘동기’와 ‘풍경’이 불안으로 바뀌어 갔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유목(遊牧 nomadism)입니다.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여행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다.”(레 25:23)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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