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구제역 매몰지 현장 둘러보니… “장마철엔 붕괴될 것”

비가 내린 27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도리리 한 농가에서는 입구에서부터 사체 썩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 농가에는 돼지 1650마리가 매몰됐으나 배수로가 없어 매몰지에 고인 흑갈색 빗물이 농가로 역류해 하수구를 타고 마을 하천으로 그대로 유입됐다. 매몰지를 덮은 1㎜ 두께의 비닐포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빗물이 매몰지로 흘러들었다. 농가주 이모(58)씨는 “매몰지 바닥에도 같은 재질의 비닐포를 깔아 돼지들이 매몰될 때 구멍이 뚫렸을 것”이라며 “빗물이 들어가면 침출수가 더 빨리 지하수로 스며들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근 또 다른 매몰지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침출수를 뽑아내기 위해 설치한 배출관의 뚜껑이 없어 빗물이 그대로 빨려들었다. 매몰지와 야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도 2m가량 떨어진 하천으로 쉴 새 없이 세차게 흘러내렸다. 주민 J씨(55)는 “이 정도 비에도 (매몰지) 흙이 무너져내리기 직전”이라며 “지금 당장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지 않으면 장마철에는 두고 볼 것도 없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시민의 상수원도 걱정이지만, 당장 마을 주민부터 매몰지 환경오염의 피해자가 될 판”이라며 “구제역이 처음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매몰지를 주먹구구식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H농장에서 만난 유모(70)씨는 농장 담장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매몰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묻은 돼지의 썩은 물이 땅으로 스며들면 지하수와 하천이 오염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돼지 854마리가 묻혀 있는 매립지는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두꺼운 비닐로 덮여 있으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계곡물이 모여드는 녹촌천에서 6m가량 떨어져 있어 수질오염이 우려됐다.

인천 강화군 화도면의 한 농가는 매립지를 덮은 흙에서 빗물이 흘러나와 하수도로 흘러들고 있었다. 농가 축사 위쪽에 조성된 이 매립지는 경사가 15도가 넘어 정부합동조사에서 비가 올 경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지목됐다. 산비탈에 위치해 있지만 옹벽도 없어 빗물 유입 시 미끄럼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돼지 1만2718마리를 묻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한 매몰지는 가파른 경사 탓에 금방이라도 흙이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붕괴가 우려돼서인지 인근에는 굴착기 1대가 놓여진 채 공무원 2명이 초조한 눈으로 매몰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 관계자는 “매몰지가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중장비와 인력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홍천과 화천 지역 역시 아직까지 산비탈이나 계곡 인근에 축대도 없이 흙을 쌓아놓고 있는 곳이 산재해 매립지 인근 주민들이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도는 최근 도내 14개 시·군의 매몰지 459곳 중 규모가 큰 119곳을 자체 점검한 결과, 40곳의 매몰지가 보강 공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방역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차 피해가 우려됐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지난 25일 구제역이 발병한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 모 돼지사육 농가에는 진입로 3곳 중 1곳에서만 공무원 1명이 방역작업을 벌였다. 마을로 진입하는 예방초소 컨테이너도 감시활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조차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한편 전남 영암군 시종면 조류 인플루엔자(AI) 매몰지는 중장비를 이용해 배수로를 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닐막을 덮고 햇살에 비닐막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광막까지 덧씌웠으나 매몰지 배수로가 농수로 옆에 붙어 있어 침출수 유출 우려가 컸다. 나주시 공산면의 한 오리 매몰지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통제선도 없었고, 표지판도 쓰러진 채 뒹굴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이천=최승욱 기자 , 전국종합=정동원 기자 cd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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